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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 모음

  • by 시소당
야담(野談) 모음 

 

 

 

 

妓家褒貶(기가포폄)

 

 어느 촌가의 기생이 집으로 찾아오는 나그네를 대접할새, 대개가 한두 번씩은 상관한 위인들이었다. 한 사람이 먼저 와서 자리에 앉아 있을 때에 뒤에 오는 자가 연속하여 마침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들어오는지라,
  『마부장(馬部長)과 우별감(禹別監)이 오시는군.』
  얼마 후에 또 두 사람이 들어온즉 기생이,
  『여초관(呂哨官)과 최서방이 또 오시는도다.』
한데 먼저 온 자가 가만 바라보니, 지금 들어 온 네 사람의 성이 혹은 김씨요, 혹은 이씨로서 마씨니 여씨니 우씨니 최씨니 하는 성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 네 사람이 각각 돌아간 후에,
  『네가 나그네들의 성씨를 그토록 모르느냐?』
  『그 분들이 다 나하고 친한지 오래된 사람들인데 모를 리가 있소이까? 마씨·여씨 등의 성을 붙인 것은 야사포폄(夜事褒貶)으로서 제가 지은 별호(別號)들이 올시다.』
하고 이어 해석하는데,
  『그중 아무개는 몸과 더불어 양물(陽物)이 아룰러 크니, 성이 마(馬)씨인 것이 분명하고 아무개는 몸은 작으나 그것은 몹시 크니 성이 여(呂)씨요, 또 아무개는 한번 꽂으면 곧 토하니 성이 우(牛)씨요, 아무개는 위로 오르고 아래로 내렸다 하기를 변화무쌍하니 최(崔)씨라. 최는 곧 작(雀)이라(참새는 아래 위로 잘 오르내리니까).』
  이어 먼저 와서 앉은 자가,
  『그럼 나는 무엇으로 별호를 주겠느냐?』
한즉,『나날이 헛되이 왔다가 헛되이 가서 헛되이 세월만 보내니, 마땅히 허생원(許生員)으로 제(題)하는 것이 적격일까 하오.』
하니 (재기)才妓의 면모가 약여하였다.

 

 

 

單袴猶惜(단고유석)

 

 시골사람 하나가 밤에 그 처를 희롱하여,
『오늘밤에 그일을 반드시 수십차 해줄테니, 그대는 어떠한 물건으로 나의 수고에 보답하겠느뇨?』
하니 여인이 대답해 가로되,
  『만약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제가 세목(細木) 한 필을 오래 감춰 둔 것이 있는데 명년 봄에 반드시 열일곱 새 누배과를 만들어 사례하리오다.』
  『만약 기약만 지켜주면 오늘밤 들어, 하기를 열일곱 번은 틀림없이 해 주리라.』
  『그렇게 하십시다.』
이날밤 남편은 일을 시작하는데 일진일퇴의 수를 셈하기 시작하며 가로되,
  『일차……이차……삼차.』
이렇게 세니 여인이 가로되,
  『이것이 무슨 일차, 이차입니까? 이와 같이 한다면 쥐가 나무를 파는 것과 같으니까, 일곱새 누배과 커녕 단과도 오히려 아깝겠소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일차가 되는가?』
  『처음에는 천천히 진퇴하여 그 물건으로 하여금 나의 음호(陰戶)에 그득 차게 한 후에, 위를 어루만지고 아래를 문지르며 왼쪽을 치고 오른쪽에 부딪쳐서, 아홉번 나아가고 아홉번 물러감에 깊이 화심(花心)에 들이밀어 이와 같이 하기를 수백차를 한 후로 양인이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사지가 노글노글하여 소리가 목구멍에 있으되 나오기 어렵고 눈을 뜨고자하되 뜨기 어려운 경지에 가히 이르러, 「한번」이라 할 것이라. 그리하여 피차 깨끗이 씻은 후에 다시 시작함이 두 번째 아니겠소?』
하며 이렇게 싸우고 힐난하는 즈음에 마침 이웃에 사는 닭서릿군이 남녀의 수작하는 소리를 들은지 오래라. 크게 소리쳐,
  『옳은지고 아주머니의 말씀이여! 그대의 이른바 일차(一次)는 틀리는도다. 아주머니의 말씀이 옳다. 나는 이웃에 사는 아무개로서 누구누구 두세 친구가 장차 닭을 사서 밤에 주효나 나눌까 하므로, 그대의 집 두어 마리를 빌리니 후일에 반드시 후한 값으로 보상하리라.』
하니, 그 도둑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 여인이,
  『명관(名官)의 송사(訟事)를 결단함이 이와 같이 지공무사(至公無私)하니, 뭐 그까짓 두어 마리 닭을 어찌 아깝다하리오.』
하고 다시,『값은 낼 필요가 없도다.』 이와 같이 시원하게 대답하였다.

 

 

 

都事責妓(도사책기)

 

  서관문관(西關文官)이 본부도사(都事)가 되어서 장차 임소(任所)에 부임 할 때에 한 역(驛)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이틑날 아침 말을 바꾸어 타니, 마상(馬上)이 요동하여 능히 견뎌 앉아 있을 수가 없거늘, 급창(及唱)이 가만히 도사에게 고해 가로되
『만약 역장한(驛長漢)을 엄치(嚴治)치 않으면 돌아오실 때 타실 말을 또한 이와 같이 하리니, 안전케 오직 소인 거행으로 쫓게 하시면 원로 행차를 평안히 하시게 되오리다.』
  도사가 허락하였더니, 급창이 사령을 불러 그 역의 병방(兵房)과 도장(都長)을 결장(決杖)하고
  『별성(別星) 행차의 앉으시는 자리를 어찌 이와 같은 용렬한 말을 내었는고? 이 말은 앉을 자리가 불편한 고로 곧 다른 말로 바꾸어 드리라.』
  하고 호령하니, 역한(驛漢)이 과연 준총(駿 )으로 바꾸어 오니, 도사가 가만히 생각하기를 상경 왕래할 때에 혹은 세 내고 혹은 빌린 말로써 사족(四足)은 갖추었으나, 내가 감히 말을 가려 타지는 못하였더니, 오늘 준구(駿駒)는 평생에 처음 타보는 것이다. 많은 날을 허비하지 않고 도내(道內)에 다달은 즉 도내 수령이 다담상을 차려 내 오고, 수청 기생을 보내 옴애 도사는 일찍이 기생을 본 일이 없는 위인이라,
  『 저 붉은 치마의 여자가 어떠한 일로 여기에 왔는고?』하니
  『본부(本府)에서 보내온 바 수청기생이옵니다. 』 라고 급창이 대답하니
  『그러면 저 여인을 무엇에 써야 되는고?』  
  『행차 하시는데 더불어 동침하심이 좋으실 것입니다.』
  『그 여인 반드시 지아비가 있으리니 후환이 없겠느냐?』  
  『어느 고을에나 기생을 둠은 나그네를 접대하기 위함이오니, 그 지아비가 비록 있다고 할 지라도 감히 어쩌지 못할 것이로소이다.』
  『좋고 좋도다…….』
  곧 불러 방으로 들게 하니 가만히 급창을 불러 귀에 소근거리기를,
  『저가 비록 여인일지나 이미 하속인(下屬人)이니, 불러 함께 앉는 것이 체모를 손상치 않겠는가?』
  『기생승당(妓生昇堂)은 원래 하나의 에사로 돼어 있는 것입니다. 재상 사부라도 많이 기생과 함께 자는 것인 즉, 기생이 청하(廳下)에 눕고 몸은 당상에 계시면 거사를 어찌 하리까.』
  도사가 드디어 기생과 자리를 함께 할새, 닭이 개 보듯 하며 개가 닭 보듯 하여 마침내 능히 한마디 말도 교환함이 없거늘 조용히 훔쳐본즉 두 눈이 서로 부딪히기는 하나, 도사가 문득 목을 낮추어 기생을 바라보는지라 이와같이 할 즈음에 밤이 이미 삼경이 된 지라, 기생이 먼저 묻기를
  『진사님께서 일찍이 방외범색(房外犯色)이 있으셨습니까?』
  『다못 나의 가인(家人)이 길이 집안에 있을 분 아니라 비록 잠간 밖에 나가는 일이 있더라도, 어찌 가히 좇아가서 밭과 들의 사이에서 행사할 수 있으랴. 감히 이따위 말은 삼가하라.』
  『일찌기 다른 사람의 처와 동침하신 일이 있습니까?』
  『옛말에 내가 남의 처를 훔치면 남도 나의 처를 훔친다고 말하였으니, 어찌 내가 이와 같은 옳지 못한 일을 하겠는가?』
  하니, 기생이 낙담하여 다시 더 말하지 아니하고, 촛불 아래서 손으로 베개하여 누워서 자다가, 잠이 깊이 들새 땅에 엎드려 자니, 숨소리가 잔잔하고 눈썹이 아름다우며, 분칠한 눈자위기 희고, 입술이 붉으며 바로 장부로 하여금 가히 넋이 혼미해지고 마음이 방탕해지게 하는지라, 도사가 한번 돌아보고 두 번 돌아볼 새, 불 같은 마음이 자연히 선동하는 고로 곧 일어나 끌어안으니, 그것은 마치 주린 매가 꿩을 채가는 것과 같은지라, 기생이 놀라 일어나 손을 떨며 가로되,
  『행차 행차하심은 이것이 무슨 일이오니까?』
  『네가 말하지 말라. 나의 급창(及唱)이 말하는 가운데 기생은 이 행객과 동침하는 것이라 하더라.』
  기생이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도사가 가로되,
  『너도 또한 좋으냐?』
  하고 드디어 끌어안고 구환(求歡)하여 촛불 아래에서 일을 시작할새 운우(雲雨)가 이미 끝나거늘 도사가 이와 같은 희음(戱淫)은 평생에 처음 맛보는 일이라,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얼굴에 홍조(紅潮)가 오르고 수족이 떨리며, 초조한 행사는 푸른 잠자리가 물을 차는 것과 같은 바쁜 탯갈이라 기생이 그 거조를 보니,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한 촌부(村夫)와 틀리지 않는지라, 경험 음사(淫事)의 가지가지 재주를 다 부려서 그 흥을 흡족케 해준다면, 마땅히 별별한 알음소리가 있으리니 드디어 기생은 달려들어 도사의 허리를 안고 다시 거사케 함에 입을 맞추고 혓바닥을 빨며, 또한 체질하듯 흔들어서 허리를 가볍게 놀려 엉덩이가 자리에 붙지 아니하는지라, 도사의 정신이 흩어지고 영혼이 날아가서, 이어 중간에서 토설(吐泄)하니, 긴 소리로 종을 부른 즉 하인들이 계하에서 기다리는지라 도사가 분부해서 가로되
  『기생차지(妓生次知)의 병도장(兵都長)을 성화같이 잡아오는 것이 옳으니라.』
  하니 ,
  『역(驛)에 병도장이 있거니와 기생차지는 수노(首奴)입니다.』
  하고 급창이 말하고 드디어 수노를 잡아다 크게 꾸짖어 가로되,
  『너의 무리가 이미 기생 하나를 보내어 행차소에 대령하게 하였은 즉, 마땅히 배 위에서 편안케 하는 기생으로써 대령케 함이 옳음이로되, 이제 이 기생으로 말하면 왼쪽으로 흔들고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다못 배 위에서 불편할 뿐 아니라 이불을 맞추고  혓바닥을 빠는데 이르러서야 어찌하랴.』
  하고 수노란 놈을 때리라고 명하였는데, 수노가 슬프게 간청하여,
  『말위에 앉으셔서 편안케 오시는 것은 역한등의 차지(次知)니, 그 잘못은 병도장(兵都長)의 부동(不動)의 죄이거니와 소인을 꾸짖은 즉 기생차지인 고로 그 용무를 보아서 수청을 받들어 모시도록 정했을 따름이요 잠자리를 할 때에 요동하는 악증(惡症)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소인은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하고 말하니, 행수 기생(行首妓生)이 웃으면서
  『소녀가 마땅히 실정(實情)을 아뢰오리다. 마상(馬上)의 불편은 말의 네 발에서 나온 병이요, 기생의 허리 아래 움직임은 이름하여 가로되 요본(搖本)이니, 이는 곧 남자에게 흥을 돕기 위함이옵지, 결코 병통이 아니옵니다. 입을 맞추고 혀를 빠는 것은 바로 봄비둘기가 서로 좋아하는 형상과 같은지라 결코 맹호(猛虎)가 개를 먹는 뜻과는 천양지 차이입니다. 』
  하고 아뢰니, 도사가 그제야 알았다는 듯,
  『정말 그러하냐?』
  이 때 하인들이 전부 물러가는 지라 다시 한 판을 차리니, 기생이 다시는 일푼의 동요도 없거늘, 그때서야 도사는 비로소 요본에 효험이 흥을 돕는데 있는 줄 알고 여러번 애걸하여 기생이 전과 같이 요본한 즉, 도사가 바야흐로 맛이 좋은 것을 알고 기쁘고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여 이틑날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 뒷통수를 연방 치면서,
  『내가 삼십년 동안이나 행방(行房)해 봤어도 이와 같이 절묘한 재미는 보지 못하였으니 나의 여편네란 사람은 부녀로서 마땅히 행할 요본이란 것을 모르는지라. 가히 탄식할 만한 존재밖에 안된다.』하고, 깊이 한숨을 쉬었다.  

 

 

 

霹靂有雄(벽력유웅)

  한 소년부처가 함께 방안에 누워 있더니, 큰 비가 쏟아지며 우레소리가 진동하여, 밤은 어둡기가 칠흑과 같고 번갯불이 촛불과 같이 밝았다.
  『장독을 잘 살폈는가?』
  하고 사내가 말하니,
  『뚜껑을 덮지 못하였노라.』
  『그대가 빨리 나가서 보라.』
  『내 본시 우레를 두려워하니 낭군은 나 대신 나가 보소서.』
  두 사람은 서로 이렇게 앙탈을 하다가 처마 밑의 비가 무섭게 내리치는지라, 처가 부득이 전전긍긍하며, 억지로 일어나서 방을 나와 장독대 옆으로 나오려 할 때에, 도둑놈 하나가 마침 대청 아래 숨어 있다가 이미 그 부처의 서로 다툰 일을 듣고, 미리 도자기 분(盆)을 들어 곧 그 여자의 앞에 던졌는데, 그 여인이 크게 놀라 까무라침에 도둑놈이 벼락처럼 달려들어 겁간하고 도망하였거늘, 그 남편이 처가 오래 들어오지 아니함을 괴상히 여겨 나가서 끌어안고 온즉, 그 때에야 겨우 소생하였다. 간신히 살아난 처의 입에서,
  『여보 그런데 벽력신(霹靂神)도 자웅(雌雄)이 있소?』
  『어떤 까닭이요?』
  처가 그제서야 부끄러워하며,
  『급작스레 벽력신이 덤벼들며 저의 몸을 내려누르기에 저는 혼비백산하였지요. 거의 죽은 몸과 같이 한동안 인사불성이 되었으나,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본즉 벽력신도 반드시 낭군과 함께 자는 법과 꼭 같습디다. 어찌 그리 조금도 틀리지 않는 남녀간의 일과 꼭 같았는지.』
  『그것봐, 내가 만약 나가서 오래 어정됐더라면 벼락을 면치 못했을 거야. 벼락 귀신이 무슨 누구의 낯을 봐가며 용서해 줄줄 알아……. 큰일날 뻔 했지.』
하고 무사했음을 자축하였다.

 

 

 

白餠沈菜(백병침채)
  

어느집 여종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여종의 남편놈은 날마다 와서 자지 않거늘 주인집의 소년이 뜻대로 간통했는데, 오히려 이를 숨기는 자는 여종과 그의 양친들이었다. 어느날 밤에 소년이 그의 처와 함께 자다가 처가 깊이 잠든 틈을 타서, 가만히 행랑으로 나갈 때, 그 처가 잠이 깨어 비로소 알고 살금살금 뒤를 밟아서 창틈으로 엿본 즉, 여종이 거절하면서 가로되,
  『서방이 왜 하필 흰 떡같은 아가씨를 버리고 구구히 이렇게 하찮은 저에게 오셔서 못살게 구십니까?』
  『아가씨가 흰 떡 같다면 너는 산나물과 같으니 음식으로 따지면 떡을 먹은 후에 나물은 가히 먹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
하며 드디어 입을 맞추며 운우(雲雨)가 방농(方濃)하니 그처가 돌아가서 여전히 누워자고 있었다.
  소년이 생각하기를 처가 행랑의 일을 보지 못하였으렸다 하고 이틑날 부처가 함께 시아버니를 모시고 있을 때, 소년이 졸지에 기침이 연발하여 입을 다물고 벽을 향하여 가로되,
  『요즈음 내가 이 병이 있으니 괴상하도다, 괴상하도다.』
  한즉 그녀가 읍해 가로되,
  『그것이야 다른 까닭인가요. 나날이 많은 산나물을 잡수신 연고이지요.』
  하니 소년의 아비가 듣고 가로되,
  『어디서 산나물이 났기에 너만 혼자 먹느냐?』
  하거늘 소년이 부끄러워 입을 닫고 곧 밖으로 나가더라.

 

 

 

 모로쇠전(毛老金傳)

 

 거시기라는 마을에 모로쇠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볼 수는 없으나 땅에 떨어진 개털도 찾을 수 있고, 들을 수도 없지만 개미가 씨름하는 소리까지 느낄 수가 있다. 코가 막혔으나 쓰고 단맛을 맡을 수가 있고, 말을 못하는 벙어리라도 구변이 떨어지는 폭포수와 같더라. 다리를 절지만 아들·딸 구남매를 두었고 집은 낡아빠져 초라하지만 항상 백성아마(白雪鵝馬)를 타고 다녔다. 말색이 숯섬에 먹칠한 것 같은 데다가 언제나 자루도 날도 없는 낫을 띠도 매지 않은 허리에다 차고 2월 三七일에 산에 들어가 풀을 베니 양지쪽에는 눈이 아홉자나 쌓였고, 응달에는 풀이 무성하여 키 넘을 정도였다. 드디어 낫을 들어 풀을 베려 하니 삼족사(三足蛇)가 나타나 머리·몸통·꼬리도 없이 보일락 말락 하더니 갑자기 덤벼들어 들고 있던 낫을 물었으니 별안간 낫이 퉁퉁 부어 오르더니 이내 뒤움박만하게 부풀어 올랐다.
 모로쇠는 어쩔 줄을 몰라 마을로 달려 내려오다가 도중에서 여승을 만났는데, 자세히 보니 유두분면(油頭紛面) 곱게 단장하고, 검은 장삼을 걸치고 모로쇠 앞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모로쇠는 급히 여승 앞에 나아가 낫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고쳐 줄 것을 의논하니, 여승은 몸을 뒤로 제껴 한쪽 손을 허리에 얹고 다른 한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하는 말이.『그건 어렵지 않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보아라. 말발굽이 닫지 않은 역원이 부엌 아궁이와 불지핀 일이 없는 굴뚝의 꺼멍과 교수관의 먹다 남은 식은 적과 행수기생의 더럽힌 일이 없는 음모와 글 읽을 때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선비와 허리춤에 이를 잡을 때 입을 삐죽이지 않는 노승과 이 다섯 가지를 한데 넣어서 찧은 약을 낫에 바르면 지체없이 낫느니라.』라고 하였다.
 모로쇠는 그때서야 안심하고 마을로 내려오니 길가에 종이도 바르지 않은 대설기가 있는데 술을 열 말쯤이나 담아 두고 등자잔으로 마구 떠마시니 얼마 아니가서 취하여 버렸다. 또한 위로 쳐다 보니 감나무에 석류가 주렁주렁 열려 두 손으로 땅을 집고 방귀를 크게 한 번 뀌니 석류가 순식간에 다 떨어졌다. 주워 보니 전부 썩어 먹을 수가 없으나 모로쇠는 죄다 주워서 벗 없는 마을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포식을 했으니 장차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고, 살려 해도 살 수도 없으니 그 결과는 어찌 되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더라.

 

 

 

 髥客逢辱(염객봉욕)

 

  어떤 자가 수염이 너무 많아 보이는가 추하게 여기더니, 그 사람이 일이 있어 외출하였는데 때마침 추운 겨울이라 장차 어한(禦寒)코자 하여 한 주점에 들어가서 따끈한 술이 있냐고 물은즉, 주점의 아이가 그 사람의 수염이 무성한 것을 보고 입을 다물고,
  『손님께서는 술을 사서 무엇에 쓰고자 하시오니이까?』
하고 웃으며 말하니 나그네가 가로되,
  『내 지금 마시려고 한다.』
하니 아이가,
  『입이 없는데 어찌 마시려고요.』
하니, 크게 노해 그 수염을 잡고 양쪽으로 가르며 가로되,
  『이것이 입이 아니고 무엇이냐?』
한즉 아이가 그 입을 보고 크게 이상하게 여겨,
  『그런즉 건너편 김아병(金牙兵)의 처도 장차 반드시 아기를 낳겠구먼요?』
이 아기를 낳는다는 말은 이 아이가 일찍이 김아병의 처가 음모가 너무 많아서 그 구멍을 덮었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침 그 집의 노파가 막대기로 그 아이를 두드리며,
  『네 아비가 비록 시골에 살아도 본시 지혜가 많아 지식이 많더니, 너는 어디로 해서 나왔길래 이와 같이 어리석고 몽매하냐? 손님의 입이 있고 없고가 네게 무슨 관계며 하물며 다른 집 여인네의 구멍이 있고 없는 것이 너같은 어린놈이 무슨 참견이냐? 말(馬)은 비록 수염이 드리웠으나 안공(眼孔)이 스스로 아래에 있고 개꼬리는 비록 커도 그 항문이 스스로 그 가운데 있지 털 많은 밑이라고 구멍이 없을까보냐.』
하고 꾸짖으니 나그네가 처음엔 어린애를 꾸짖어서 매우 유쾌했었는데, 그 나중의 두어 마디에 그만 부끄러움과 분함을 못 견뎌 하였다.

 

 

 

 

  모란탈재(牧丹奪財)

 

 평양에 한 기생이 있었다. 재주와 아름다움의 경적에 빼어났었다.

 향생 이서방이란 사람이 나라의 지인(知人)이 되어 취임할 새, 처가집이 그의 노자와 옷을 화려하게 차려주어, 도하(都下)에 와서 머물게 됐는데 마침 기생 사는 집과 서로 가깝거늘, 기생이 그의 가진 물건이 많은 것을 보고, 이를 낚기 위하여 이서방 있는 곳에 와서 일부러 놀라 가로되,  『높으신 어른께서 오신 줄은 몰랐습니다.』하며 곧 돌아가거늘, 이서방이 가만히 사모하더니, 저녁에 기생이 이서방을 위로해 가로되,

『꽃다운 나이에 객지에 나서서 시러금 심심치 않으십니까? 첩의 지아비가 멀리 싸움터에 나가 여러 해 돌아오지 않으니, 속담에 이르기를 과부가 마땅히 홀아비를 안다 하였은즉, 별로 이상하게 생각지 마시오.』하며, 교태 어린 말로 덤비니, 드디어 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서방이 가진 물건을 다 기생에게 쓰면서 함께 있게 되었는데 기생이 매일 아침에 식모를 불러 귀에다 대고 가로되,  『밥반찬을 맛있게 하라.』하거늘, 이서방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음에 반겨, 있는 자물쇠 꾸러미를 다 맡겼다.

하루는 기생이 문들 시무룩해서 즐기지 않을 새, 이서방이 위로해 가로되,

『정분이 점점 떠가느뇨? 의식이 모자라느뇨?』

『어느 관리는 아무 기생을 사랑하여 금비녀와 비단 옷을 해 주었다 하니, 그 사람이야말로 참말로 기생서방의 자격이 있다 하겠소이다.』

『이는 과히 어렵지 않은 일이니 너의 하고자는 바를 좇으리라.』

하고 패물을 사주니,

『이렇게 함께 사는 처지에 무엇을 그리 함부로 낭비하시오.』

『재물은 나의 재물이니 무슨 관계리?』하며 이서방이 노해 말하는데, 또한 장삿군이 값진 비단을 팔러 왔으며, 이서방이 그 나머지 재물을 가지고 사려고 한즉, 기생이 일부러 제지하여 가로되,

『곱기는 곱지만 입는 데 완급이 잇느니, 어쩌리요.』

이서방이 꾸짖어 가로되,

『내가 있으니 걱정이 없느니라.』
 기생이 일보는 계집으로 더불어 비단을 가지고 밤을 타서 도망했거늘, 이서방이 등불을 켜고 홀로 앉아 잠 못 이루며, 새벽에 이르러 해가 높도록 돌아오지 않는지라.

조반을 짖고자 궤짝을 연즉, 한 푼의 돈도 남겨 두지 않았다. 이에 이서방이 분김에 스스로 죽고자 해 봤으나 이웃 노파가 와서 가로되,

『이는 기생집의 보통 있는 일이니, 그대는 그것을 실로 모르느뇨? 매일 아침에 부엌데기에게 한 은밀한 얘기는 가만히 재물을 뺏고자 함이었고 다른 사람을 칭찬한 것은 낭군으로 하여금 격분케 해서 효과를 보고자 함이었고, 그 나중에 비단을 와서 팔게 한 것은, 밀통했던 간부로 더불어 나머지 재물을 뺏고자 함이라.』

한즉, 이서방이 심히 분해 가로되,

『만약 그 요귀를 만나기만 하면 한 몽둥이로 때려죽이어 꺼꾸러뜨린 다음 옷과 버선을 벗기리라.』

하며, 드디어 교방(敎坊) 길가를 엿보던 중

 기생이 그 동무 수십 명을 이끌고 떠들면서 지나가는지라. 이서방이 막대기를 가지고 앞으로 뛰어나가 가로되,

『요귀 요귀여, 네가 비록 창녀이긴 하나, 어찌 차마 이와 같은고? 나의 금비녀와 비단 등속을 돌려 보내라!』

한즉 기생이 박장대소하여 가로되,

『여러 기생들은 와서 이 어리석은 놈을 보라. 어떤 시러배아놈들이 기생에게 준 물건을 돌려달란 놈이 있더냐.』
 여러 기생들이 앞을 다투어 그 모양을 보고자 하되, 이서방이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워 군중 가운데 숨어 피해 달아나는지라.

이서방이 의지할 데 없이 길가에서 얻어먹더니, 비로소 처가에 이르른즉, 장모가 노하여 문을 닫고 쫓으니, 이서방이 능이 스스로 살 수 없어 드디어 동네 걸식하거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웃지 않은 자 없었다.

 

 

 

 

 

 

吾腎代納(오신대납)
  

나이 늙은 능관(陵官)이 능지기 한 놈을 보고 이르되,
『내 이미 이가 없으매, 굳은 물건은 씹어 먹을 수 없으니, 내일 아침 반찬에 부드럽고 연한 물건으로 바치되, 저 생치(生雉)나 송이 등속이 내 식성에 맞느니라.』
하니 능지기가 부복하여 대답하고 나가면서,
  <온 영감도……. 생치쯤이야 글쎄 닭을 대신하면 될 테고 송이가 어찌한담. 옳지. 신(腎)으로써 대신 드리면 되겠군……. 주리할……. 쳇.>
하고 중얼거리더라. 능관의 주문도 주문이지만 능지기의 독백도 영완(獰頑)하도다.

 

 

 

 

溺缸必無(익항필무)

  어느 부잣집 소녀 과부가 매양 젖어미와 짝하여 자더니, 하루는 젖어미가 병고로 자기 집으로 돌아갈 새, 과부가 이웃집 여인에게 청하여 가로되,
  『젖어미가 출타하여 홀로 자기 무서우니, 아주머니집 종 고도쇠(高道釗)를 불러 주시면 저녁을 잘 대접할 테니, 함께 수직(守直)케 해 주심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이웃집 아주머니 허락하여 곧 고되쇠를 보내 줄새, 고도쇠는 그 때 나이 열여덟에 우둔하고 지각이 없는 놈이었다.

과부집에 와서 저녁밥을 얻어먹고 당상(堂上)에서 누워 자는데, 그 코고는 소리가 우레와 같으며, 아직 한번도 여체(女體)를 경험하지 못한지라 순수한 양물(陽物)이 뻣뻣이 일어나서 잠방이 속을 뚫고 밖으로 나와 등등하게 뻗치고 섰거늘, 밤은 깊고 적막하여 어린 과부가 이를 보고, 갑자기 음심(淫心)이 발동하여 가만히 고도쇠의 바지를 벗기고 자기의 음호(陰戶)로써 덮어 씌우고는 꽂고 들이밀었다 물러갔다 하여 극진히 음란을 행한 후에 정액(精液)을 배설하고, 일어나 고도쇠의 바지를 도로 입힌 후에 자기 방에 돌아가 자다가, 이튿날 아침에 그 종놈을 보내었더니, 아직도 젖어미가 오지 않는지라 소녀과부가 또한 그 고도쇠 보내 주기를 청한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곧 고도쇠를 불러 설유해 가로되,
  『뒷담집 아가씨 댁에 기명(器皿)도 많고 음식도 많고 의복도 많으니, 네가 그리로 가는 것이 좋으리라.』
한즉,
  『비록 기명은 많으나 요강이 없습니다.』
하니,
  『그 부잣집에 요강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하고 주인아주머니가 꾸짖으니,
  『요강이 없는 고로 엊저녁에 아가씨가 손수 소인의 바지를 벗기고 소인의 신두(腎頭) 위에 오줌을 쌌습니다.』
한즉 이웃집아주머니가 듣고 또 스스로 부끄러워 감히 다시 가란 말을 하지 않았다.

 

 

 

 

産婆還驚(산파환경)
 

 한 산파가 어느 산가(産家)에 왕진을 갔는데, 그 집에 한 탕자가 있어 산파의 자색이 아름다움을 보고, 딴 생각이 나서 돌아가 빈집을 한채 얻고 병풍과 족자 등의 가구를 벌려 놓은 다음, 그 방을 캄캄하게 한 후에 탕자가 벌거벗은 몸으로 이불 속에 드러눕되, 뜰에는 약탕관을 베풀게 하여, 여종으로 하여금 일부러 궁귀(芎歸) 등속을 찌게 하여 교자(轎子)를 보내서 산파를 영접해 왔거늘, 산파가 곧 방안으로 들어온 후에 병풍을 열고 손을 이불 속에 들이밀어 아이밴 어미의 윗배(上腹)로부터 아래로 이르도록 살펴 널리 주물렀는데 배가 별로 부르지 않고 높지 않은지라,

산파가 의심하여 다시 여러번 아래위를 어루만지는데 음문(陰門) 가까운 곳에 이르니 그 물건(陽物)이 크게 뻗쳐서 배꼽을 향하여 누워 있거늘, 산파가 크게 놀라 뛰어나오니, 여종이 희롱해 묻되,
  『우리집 가시내가 어느 때나 해산을 하겠습니까?』
  산파 가로되,
  『어린아이의 머리가 먼저 나오면 순산이요, 발이 먼저 나오면 역산(逆産)이요, 손이 먼저 나오면 횡산(橫産)이로되, 이 아이는 신(腎)이 먼저 나오니, 이제 비로소 처음 보는 것인데 하물며, 그것(陽物)의 크기가 너의 할아비의 대가리보다 큰지라 그런 고로 졸지에 순산키 어렵겠노라.』
하였다 한다.

 

 

 

 

主人行房(주인행방)
 

 나이가 서로 비슷비슷한 숙질간이 함께 길을 가다가 어느 객사에 묵게 되었더니, 주인 부처가 얇은 벽을 격한 방에서 밤이 깊은 뒤에 밤새도록 갖가지 재주를 다하며 일을 시작하는데, 조카는 마침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 소리를 듣고 손으로 그 숙을 잡아 흔든즉, 숙이 깊은 잠에 빠져 깨지 못하는지라 이튿날, 그 숙에게,
  『지난밤 이러이러한 재미있는 현상을 보았습니다.』
  하니,
  『어째서 나를 깨워 그것을 함께 구경케 하지 않았느냐.』
  『그럴 리 있습니까? 암만 흔들어도 아저씨께서 통히 일어나셔야지요.』
  그 아자비가 제기랄 하고 탄식하며,
  『오늘 하루만 더 묵어서 우리 그짓 하는 것을 좀 보고 가자. 오늘 저녁에 내 명심하고 자지 않고 기다리리라.』
  하고 병을 핑계삼아 하루 더 묵게 되었다.

그날 밤도 깊었으나 주인의 음사(淫事)가 마침내 동정(動靜)이 없는지라, 숙은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더니, 깊은 잠이 들기 전에 벽을 격한 방에서 주인이 처의 옷을 벗기는 소리가 부시럭거리거늘, 그 조카가 아자비를 흔든즉 숙이 비몽사몽간에, 크게 기뻐하며 큰소리로,
  『주인놈이 그 일을 정말 시작했느냐?』
  하니 주인이 듣고 놀라 음심(淫心)이 위축하여 다시 하지 못하는지라. 이틀이나 헛되이 여관이 머물러 있다가 마침내 주인놈의 행락하는 광경을 보지 못하고 헛되이 밥값만 치렀단다.

 

 

 

 

巡使反(순사반) 


  한 순찰사가 장차 도내(道內)의 대촌(大村)의 뒷산에 아비 무덤을 쓰려 하거늘 촌민이 걱정치 않는자 없으니 위세를 겁내어 입을 열어 말하는 자 없고, 나날이 으슥한 곳에 모여 앉아 함께 의논하기를
  『순찰사또께서 만약 이곳에 입장(入葬)하시면, 우리 대촌이 스스로 패동(敗洞)이 될 것이오. 누가 수백명이 양식을 싸 짊어지고 임금께 직소(直訴)하거나 비국(備局)에 등장(等狀)하는 것이 어떠냐?』
  하고 분운(紛 ) 할 때에 이웃에서 술 파는 노파가 이 소리를 듣고 웃으면서,
  『여러분이 사또로 하여금 금장(禁葬)케 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니 무엇이 그리 근심할게 있습니까? 여러분 한 사람 앞에 한 냥 씩만 돈을 거두어 늙은 저를 주신다면, 제가 마땅히 죽음을 걸고 금장케 하리이다.』
  하니 여러사람이
  『만일 능히 금하지 못한다면 어찌하겠는가?』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 하여도 원망치 않겠나이다.』
  하여 촌민 五 ,六백명이 각각 한냥씩을 거두어 주니, 그 돈이 수천냥이었다. 노파가 사람을 시켜 그 천장(遷葬)하는 날을 더듬어 알고 미리 한 단지의 술과 한 마리의 닭을 안주로 하여 길가에 앉아 기다리다가, 감사가 산으로 오를제 옆에서 합장 부복하여,
  『쇤네는 이미 죽은 옛 지관(地官) 아무개의 처올시다. 곧 사또께서 대지(大地)를 구하여 바로 면례(緬禮)를 잡숫는단 말씀을 듣자옵고, 간략히 주효를 장만하여 하례를 드리고자 왔습니다.』
  이 때 전도하인(前導下人)이 금축(禁逐)할새, 감사 펀듯 지사(地師)의 아내란 소리를 듣고,
  『너는 어인 연고로 여기가 좋은 데라고 생각했느냐?』
  한즉 노파가,
  『쇤네의 남편이 살아 있을 때

항상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곳에 입장하기만 하면, 그 아들이 당대에 반드시 왕후(王侯)가 되리라 하는 고로 쇤네가 나이 비록 늙었으나 어이 그말을 잊으리오. 매양 이곳을 지낼 때면 그저 빈 산만 우러러 뵈었더니 이제 사또께서 능히 이렇게 좋은 땅을 아시고 쓰시는 바에 어찌 또한 장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이른바 복많은 분이라야 길지(吉地)를 만난다 하였으니 이로써 하례 차로 왔습니다. 쇤네가 마침 늦게 자식이라고 하나 둔 게 있사오니, 엎드려 원컨대 일후에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이를 듣고 크게 놀라 사람으로 하여금 노파의 입을 막아서 보내며 드디어 그곳에 면례(緬禮)할 것을 단념하고 돌아갔다.

 

 

 

 

  임랑돈독(林郞敦篤)

 

 전라도 고부 땅에 경상사(景上舍)라는 사람이 과년한 딸 하나를 두었는데 드디어 부안 땅 임씨댁 아들을 사위로 맞게 되었다.

화촉을 밝힌 첫날밤에 신랑 임서방이 공교롭게도 아랫배에 종기가 생겨서 운우(雲雨)의 재미를 못보고 사흘을 보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경씨가 딸을 불러 묻기를,

『임서방이 그 일을 알더냐?』

하고 물으니 그 딸은 아무 대답을 않고 울기만 하였다. 경씨는 이상히 여겨 더 물으려 하다가 혹시나 연연한 정을 다칠까 싶어 그 누이를 시켜 물어 보게 하였다. 그랬더니 소리내어 통곡하면서 말하기를,

『아버지·어머니가 나를 망쳤어. 신랑은 사내노릇도 못하는 병신이란 말야. 응응……』

경씨 부부는 크게 놀라 급히 편지를 써서 바깥사돈인 임씨에게 보냈다.『장가든 지 사흘토록 신랑은 사내노릇을 못해 외손자 보기 틀렸으니 원통하고 애통하오.』

라고 했더니 임씨가 답하기를,

『내 아들의 그것을 언제 보았기에 그런 말씀하시오. 일전 돌다리 밑에서 고기를 잡을 때 얼핏 보았더니 왼손으로 가리면 바른족이 남고, 바른손으로 가리면 왼쪽이 남았소. 뿐만 아니라 이웃 김호군(金護軍)의 계집종이 막덕이를 작첩하여 두 남매까니 낳아 잘 자라고 있으니 내 아들을 의심함은 천부당만부당하오. 다만 그날 손이 서는 방위로 출행한 때문이라 마땅히 크게 꾸짖겠사오니 아무 염려 마오.』

라고 답하였다. 경씨가 읽고 이제야 안심하고 기쁜 마음으로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여보, 그런 것이 아닐 겁니다. 편지는 그렇게 하였으나 지난날에 아무 증험도 없었으니 그 일을 어찌 믿겠소. 바깥사돈은 반드시 자기 아들을 위하여 거짓으로 한 말임이 분명합니다.』

라고 말하였다.

사실 듣고 보니 경씨도 그럴듯한지라. 고래를 떨어뜨리고 수심에 잠겨 있을 때 까불이 맏사위 우서방이 나타나서 장인·장모를 뵌 후,

『요사히 두 분의 얼굴빛이 심히 좋지 못하옵고, 혹시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 것 같사온대 감히 그 연유를 알고 싶사옵니다.』

하니 장인이 추연히 이르기를,

『자네는 우리집에 온 지가 오래라. 내 자식과다름이 벗으니 어찌 적은 일이라도 숨기겠는가. 그런데, 자네는 들어보게. 새신랑이 장가온 지 사흘토록 사내 일을 모르니 그 집의 앞일이 낭패 아닌가.』

이 말을 들은 우서방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팔뚝을 걷어 올리면서,

『어렵잖은 일이올시다. 제가 꼭 알아뵙지요.』

라고 자신 있게 말하였다.

며칠 후 임서방이 처가에 들렸는지라. 맏사위 우서방은 대문 뒤에 숨어 있다가 임서방이 문에 발을 딛자마자 다짜고짜 때려눕혀 그것을 만져보니 과연 큰지라. 우서방은 지체않고 소리질러,

『장인·장모님! 신부는 대복이요, 임서방의 물건은 길고도 큽니다.』

하면서 팔뚝을 흔들어 흉내를 내보니, 경씨 부부는 어느 정도 마음은 놓였으나 미상을 직접 보는 것만 같지 못하였다.


 밤이 되자 경씨는 이내 신방에 불을 밝히고 신랑·신부를 들여 보내고는 자신은 가만가만 집 뒤로 돌아가서 뒷문에 침을 발라 구멍을 뚫고 발돋음하여 거동을 엿보았다.

임서방의 종기는 이미 다 나았고, 아버지로부터 꾸중까지 들었으므로 회분이 얽혀 방사(房事)가 자못 강하고 바야흐로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경씨는 허겁지겁 안방으로 달려와 엉겁결에 자기 처를 보고,

『여보, 마누라. 등잔에 술 붓고 탕관에 불 켜오. 신랑이 일을 한다, 일을 해. 시렁 위의 대설기를 내려 가져오시구려. 홍시를 얼른 갖다줘야지.』부인 또한 좋아라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그 전날 나에게는 그렇게도 아끼던 홍시 이제야 맛 보겠구료.』

하고 계집종을 불러 꿇게 하고 그 등에 올라가 설기를 내리려 하니, 워낙 무거워 힘이 차서 무심중 방귀가 나왔겠다. 그 처는 무참을 견디지 못하여 계집종을 꾸짖고 마구 때려 갈겼다. 이 광경을 본 경씨는 매를 빼앗아 말리면서,

『일이 급하여 그렇게 되었거늘 어찌 그 애의 죄라 하겠소. 하물며 속담에 첫날밤에 신부가 방귀를 뀌면 복증이라 하는데, 이제 계집종이 방귀를 뀌었으니 근들 어찌 나쁘다 하리요.』

하니 그의 처는 손뼉치며 웃으면서,

『기실은 그년의 방귀가 아니라 저의 방귀라오. 우리 딸은 복도 많다, 복도 많지.』

 

 

 

 

知之何用(지지하용)


 

여종을 간통하기를 좋아하는 선비가 있었다.

무슨일로 인하여 비부(婢夫)를 수십리 밖에 심부름을 보낼새, 비복놈이 십분 주인의 처사를 수상히 여기던 터이라 그 기미를 알아 차리고 이레 사람들을 고용하여 대신 보내고 스스로 그 방에 숨어있었다.

밤이 깊은 후에 주인이 이미 비부란 놈이 출타한 줄로 아는지라 아무 꺼리는 바 없이 여종의 방에 들어간즉, 다못 한 사람이 누워 자고 있는 소리 뿐이라 혼욕이 용동하여 이불 아래 꿇어앉으며 한 손으로 이불을 걷고 두 다리를 들어 찬 후에 그 허리를 꽉 끌어안은 즉, 주객 네 다리 사이에 두 거북의 대가리(兩個龜頭)가 돌연히 서로 부딪치거늘 주인은 창황지간에 꾸며댈 말이 없는 고로 이에 가로되,
  『너의 물건이 왜 그리 크냐?』
  하니,
  『비부의 양물(陽物)이 크고 작은 것을 양반이 알아 무엇하리오.』
  하니 주인이 아무말 없이 물러가더라.

 

 

 

 

  주장군전(朱將軍傳)

 

 주장군의 이름은 맹(猛)이요, 자는 앙지(仰之)니 그 웃대는 낭주(囊州)사람이었다.

민 선초 강(剛)이 공갑(孔甲)을 섬기되 남방주오 역상지관(南方朱烏 曆象之官)을 맡아 출납을 관장하더니 그 공으로 공갑은 매우 기뻐하여 감천군 탕목읍을 주시고 식읍(食邑)을 삼게 하니 이로부터 그 집에 있게 되었다.
 아비의 이름은 난이며, 열 임금을 계속해서 섬겨 벼슬은 중랑장(中郞將)에 이르렀고, 어미 음(陰)씨는 관(貫)이 주애현(朱崖縣)인데 어려서부터 자색이 아름다와 붉은 입술과 붉은 얼굴, 성품이 어질고 내조의 공이 컸으므로 그 아비 난은 매우 소중이 여기는 터라, 비록 적은 허물이 때때로 있었으나 그것을 탓하지는 않았다.
 대력(大曆) 2년에 그 아들 맹을 낳으니, 맹의 품행이 비범하였으나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눈이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때때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더욱 그 이름을 떨칠 때도 있으니 반드시 흠잡을 것은 아니라고도 하겠다.

맹은 성격이 온순하고 특히 목의 힘이 대단하였다. 그 힘이 세므로 한번 화가 나면 수염이 꼿꼿하고 힘줄이 온몸에 드러나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오래도록 읍하고 굽힐 줄 모르나 남을 공경할 줄 알고, 조심하여 자주 몸을 굽혀 꺼덕하였다. 몸에는 언제나 토홍(土紅) 빛 단령(團領)을 입고 비록 엄동폭서를 당할지라도 벗을 줄을 몰랐다. 무릇 출입할 때는 반드시 두 개의 환자(丸子)를 붉은 주머니에 넣어서 잠시라도 몸에서 떠날 사이 없이 차고 다녔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모두들 독안룡(獨眼龍)이라 하였다.
 이웃에 장중선(掌中仙)·오지향(五指香)이라는 두 기생이 있었는데, 맹은 이들을 좋아하고 즐겨하였다.

그러므로 남 몰래 그들과 번갈아 자주 만나다가 드디어 두 기생들이 알게 되어 주먹을 휘두르면서 죽네 사네 달려 들었으나 맹은 워낙 성질이 온순하였으므로 두들겨맞아 눈시울이 몇 군데 찢어지고 눈물이 옷깃을 적시었으나 오히려 달게 받고 웃으며,

『하루라도 너희들의 주먹으로 두들겨맞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고 섭섭하더구  나.』

이 얘기를 전해 듣는 사람들은 모두 맹을 천히 여겼다. 그후부터 맹이 절조를 굽힌 것을 크게 뉘우치고, 기회가 있으면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굳게 맹세하였다.
 단갑(亶甲)이 즉위한 지 3년에 제군(臍郡) 자사(刺史), 환영(桓榮)이 주언하기를,

『군아래 오랜 보지(寶池)가 있사온대, 샘물이 달고 땅이 기름진 곳이어서 초목이 무성하나, 사는 백성들이 희소하온대 힘써서 개간한다면 반드시 그 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하오나, 근자에 가뭄이 심하여 그 못이 거의 마르고 가끔 못 기운이 위로 올라와 응결하고 있사오니,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즉시 조신(朝臣)을 파견하시와 지신(地神)을 개유하시고 날로 역군을 감독하여 못을 깊이 파서 못물을 모아두었다가 흘려 낸다면 천하대본(天下大本)을 잃지 않겠사올 것이어며, 비록 무식한 필부(匹夫) 필부(匹婦)라 할지라도 어찌 폐하의 조치에 감동하지 않으리요? 깊이 통촉하시와 선처하심을 복망하나이다.』

왕은 그 말을 옳게 여기고, 파견할 사람을 물색하였으나 좀처럼 생각나지 않으므로, 여러 신하를 모아서 인물 선택을 자문하니 온양부(溫陽府) 경력(經歷) 주차(朱 )가 맹을 추천하면서 가히 쓸만 하다고 하니, 왕은 이르기를,

『짐도 또한 음향(飮香)이 오래인지라, 다만 상말에 이르기를……눈이 바르지 못하면 그 마음도 바르지 못하다……한즉 맹을 듣기는 대머리에 상하 찢어진 외눈이 한이로다.』

주차가 그 말을 듣고 사모도 안 쓴 대머리를 조아리며,

『옛 성군은 오히려 두 알로써 간성지장을 버리지 않았다 하옵니다. 어찌 다만 한 가지 용모의 흠을 가지고 갑자기 버리시나잇가?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당분간만 맹을 시험하여 써 보소서. 만일에 맹이 그 직을 능히 감당하지 못 하온다면, 신이 그 죄를 마땅히 감수하겠나이다.』

왕이 아무 말 없이 오래도록 앉았다가,

『경의 말이 옳도다. 다만 맹이 깊은 숲속에서 몰을 움츠리고 그 양기를 감추었거늘, 오히려 그가 짐이 기용함을 좋아하는 기색 없이 사양하며,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어찌하겠는가. 짐은 그것이 몹시 두렵소.』주차가 이르기를,

『맹의 성품이 강유를 겸하여 펴고 나오면 그 위력이 하외(河外)에 미치고, 비록 사나운 용맹을 굽혀서 하내(河內)에 들어가 있음은 사지(四肢)에 뼈가 없는 소치이온즉, 폐하께서는 성심껏 청사신다면 그가 어찌 사양할 수 있겠나이까?』
 왕이 주차로 하여금 날을 받아 폐물을 가지고 가게 하였는데, 맹은 즐겨 왕명을 받들거늘 왕이 크게 기뻐하며 절충장군(折衝將軍)을 하이시고 보지착사(寶池鑿使)로 명하시니, 맹은 명을 받들어 주야로 강행하여 용천(涌泉)과 양릉천(陽凌泉)을 지나고 양관(陽關)을 지나면 곧 못 언덕에 이른다. 못과 양릉천 사이의 거리는 겨우 삼리(三里)이다.
 먼저 이성(尼城) 사람 맥효동(麥孝同)이 스스로 못을 파서 물대일려 꾀하다가, 장군이 온 것을 듣고 얼굴을 붉히고 물러났다.

장군은 사방을 두루 살피고 득의만면한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 땅은 북으로 옥문산이 솟아 있고, 남쪽으로 황금굴이 이어 있고, 동서의 붉은 낭떠러지 서로 둘러서 있고, 그에 한 바위가 있으니, 모양은 흡사 감씨를 닮았는데, 진성 술객(術客)들이 이르는바, 요충출지(要衝出地)요, 지형은 용이 구슬을 머금은 형극이라 적은 힘으로는 소기한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로다.』

하고 드디어 조목을 들어 그 형세를 왕에게 표(表)를 올리니,

『신 맹은 선조의 여열(餘烈)을 이어받아 성조(聖朝)의 크나큰 은혜를 입어 절충 천리에 죽어서라도 그 절개를 세우려 하는 바이라, 어찌 오래도록 외지에서 사소한 고행을 싫어하리요. 성공한 후라야 알 것이오니, 몸이 감천군에 이르러 어찌 일함을 꾀하지 않으리요. 바라옵건대 살아서 옥문관(玉門關) 중에 들어가옴을 날로 기다려 마지않는 바이옵니다.』

왕이 맹의 표를 보시고 즐겨 마지 않으시면서, 그의 장한 공적을 칭찬하는 글을 내려 이르기를,

『서방(西方)의 일은 오직 경에게 맡겨 부탁하는 바이니, 경은 노력을 아끼지 말지어다.』

맹이 조서를 받들어 머리 조아려 치사하고, 사졸(士卒)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며, 혹은 타이르고 혹은 파헤치며 혹은 반면(半面)만 보이고 혹은 전체를 나타내어 구부렸다가 폈다가 엎디었다 제쳤다 들어갔다 나갔다, 몸을 굽혀 있는 힘을 다하여 거의 필사적이라.
 일은 아직 반도 못하여서 비로소 맑은 물줄기 몇 가닥이 흘러서 마지 않더니, 갑자기 흐린 조수가 용솟음쳐 나와 감당이 불담당이라. 전 섬이 몽땅 물에 빠지고 수풀도 잠겨졌으니, 장군 또한 어찌 면하였으리요. 온몸이 흠뻑 젖어 태연히 서 있으면서 머리털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때에 백혀가리 횽벼룩의 무리들이 함께 살더니 이 갑작스런 외씨의 환(患)을 당하여 같이 숲속에 숨어 있다가 조수의 변을 당하였다. 물에 밀려 황금굴까지 떠내려갔다가 굴신을 만나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하니 굴신이 말하기를,

『요사이는 짐승들의 무리까지 또한 이런 환을 당하니 큰 탈이로구나. 그가 가끔 미음을 보내어 대접하는 것을 고맙게 여겨 일체 말하지 않음이 오래더니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마땅히 꾀하리라.』

벼룩의 무리들은 좋아라고 날뛰며,

『이 일은 저희들 일가 부스러기의 생사에 관한 일이오니 널리 살피시와 저희들 미물(微物)을 불쌍히 여기소서.』

굴신이 벼룩의 말을 듣고 자못 딱하게 여기고는 곧 못신한테 가서 크게 꾸짖었다.

『너희 집의 지각없는 손이 너무나 심하게 구는구나. 언제나 이환낭(二丸囊)을 우리집 문앞에 달아두고 출입이 무상하니 처음은 다문다문 그러기에 가만히 참았더니 나중에는 너무 잦은 나머지 이웃의 체면도 돌보지 않고 물로 우리집 뜰과 문을 흠뻑 적시고 문짝을 함부로 치니 미쳐도 분수가 있지 어찌 이럴수가 있느냐?』

굴신은 연신 입을 삐죽거렸다. 못신을 잘못했다고 빌었다.

『손의 출입이 심하여 그 폐가 존신(尊神)에게 미쳤으니 비록 죽물의 변상이 있기는 하였으나 어찌 문을 더럽히는 욕에 당하리요. 이에 존신을 위하여 마땅히 벌을 주어야 하겠사오니 존신은 이웃의 정리(情理)를 생각하시와 널리 용서바라옵니다.』

밤이 되어 못신이 가만히 엿보니, 장군은 사졸을 독려하여 못 파는 데 정신이 팔려 전후를 분간치 못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가만히 그 머리를 깨물고 또한 두 언덕의 신을 부려 협공케 하니 장군은 머리가 터져 흰 골수가 몇 술 가량 흐르더니 힘이 다하여 죽고 말았다.
 이 부음(訃音)을 들은 왕은 몹시 애통한 나머지 조회를 파하고 백사를 삼가하고 맹에게 <장강직효사홍력공신(長剛直效死弘力功臣)이란 호를 내리시고, 예로서 곤주( 州)에 장사지냈다. 나중에 곤주를 지나던 어떤 사람이 우연히 장군을 만났는데, 자세히 쳐다보니 대머리를 번쩍거리며 지금도 여자의 그것 속을 헤엄쳐 다니며 때때로 불생불사의 석가의 학문을 배우고 있다한다.

 

 

 

 

僧止兩祝(승지양축)

 

  스님 한 분이 서울의 승경(勝景)을 듣기 싫도록 들은 후 송기떡과 깨밥 등속을 싸가지고 남문으로부터 동으로 향하여 순행해서 서쪽으로 사직(社稷)뒷길에 이르른 즉, 이미 날이 저물매 인경 칠 때가 가까와 왔는지라, 원래 서울에 아는 집이 없고 잘 곳도 없는데 밤에 수라꾼에게 붙잡힐 염려가 있는지라, 한 재상가의 집 뒷행랑 굴뚝 옆에서 은신하고 장차 파루 칠 때를 기다리더니, 밤은 깊어 삼경이 되매 만뢰(萬 )가 함께 고요한데, 행랑방에서 사내가 그처에게 이르되,
  『우리 두 사람이 밤마다 그 일을 빼지 않고 하되 헛되이 정혈(精血)만 낭비하고 마침내 자식 하나 얻지 못하였으니 심히 괴상한지라, 이는 반드시 축원치 않고 일을 하기 때문이니 지금으로부터 시작하여 원하는 바를 따라 그 정성을 다하여 입으로 축원을 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
  한즉 여인이
  『그걸 진작 그렇게 할걸 그랬어요.』
  하며 남편을 향하여
  『낭군의 소원은 어떤 아들 딸을 원하십니까?』
  『나는 풍신 좋고 지략 많은 건강한 남자를 낳아서 길이 후한 요포(料布)를 받아 아문(衙門)에서 일하고 쌀도 많고 돈도 많은 남자를 부러워 하노라.』
  하며 처에게 물어 가로되,
  『낭자의 소원은 과연 어떠하오?』
  『평생에 얼굴이 잘생기고 영리한 여자로서 길이 전재(錢財)가 많아서 시어미 시아비 없는 집 며느리가 되어, 돈 쓰기를 물과 같이 하며, 또 우리 친정집에도 그 혜택이 미치게 하는 그러한 여식아이를 두기 원하오.』
  하며 곧 이 큰 소망들을 성취해 보려고 그 일을 시작할 즈음에 낭군이 크게 그 물건을 일쿼서 그 구멍에 꽂고 다시 수건으로 손을 씻고 경축하기를
 『성조도감 신령전(成造都監神靈前)에

대마구종 조성지원(大馬驅從造成之願)이오. 색장구종(色掌驅從) 조성지원이오. 행수사령(行首使令) 조성지원이오. 인배사령(引陪使令) 조성지원이요, 고직방직(庫直房直) 조성지원이요, 기총대총(旗摠隊摠) 조성지원이요, 이로부터 원을 따라 조성조성(造成造成)하여지이다.』
  하고 비니,
여자가 따라서 대대(對對)를 지어 축원하기를,
  『삼신점지(三神點指)로 제석전 수청시녀 점지지원(帝釋前隨廳侍女點指至願)이요, 선정각시(善釘閣氏) 점지지원이요, 전갈비자(傳喝婢子) 점지지원이요, 찬색저아(饌色姐娥) 점지지원이요, 아지유모(阿只乳母) 점지지원이요, 모전분전말루하(毛廛粉廛抹樓下) 점지지원이요, 의녀무녀(醫女巫女) 점지지원이요, 수모중매(首母仲媒) 점지지원이니, 한번 양정(陽精)을 받아 원을 따라 점지하소서.』
  하니, 스님이 창구멍을 뚫고 들여다보니 그 해괴망칙하고 음란질탕한 형상을 눈뜨고 차마 볼 수 없는지라 스님의 아랫배가 뭉클하며 배 아래에 있는 물건이 크게 성내는지라 주먹으로 그 물건을 어루만져 희롱하며 축원하기를,
  『나무아미타불. 불전인도화상 출생지원(佛前引導和尙出生至願)이오. 법고화상(法鼓和尙) 출생지원이오. 바라화상출생지원이오. 대사수승(大師首僧) 출생지원이오. 총섭승장(總攝僧將) 출생지원이니, 어찌 이 홀아비중이 홀로 남자를 낳으며, 어찌 이 홀아비 중이 홀로 여자를 낳으리오. 아미타불도 할 수 없을 것이오. 관음보살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아난가섭(阿難迦葉)에 일석인연으로 생남생녀했다는 일을 내 아직 듣지 못했으니 방중시주 양위부처(放中施主兩位夫妻)는 음양배합에 가히 축원하는 바가 있으나, 문밖에 객승은 상하독두(上下禿頭)에 아직 아름다운 짝이 없으니, 어찌할 수 없는지라…….』
  이와 같이 할 즈음에 창문이 찢어지며 어느새에 스님의 아랫 독두가 방안으로 뛰어드는지라, 방안의 축원하는 소리가 급작히 놀래어 멈추더라.

 

 

 

신황서앵(新黃壻鶯)

 

 어리석은 한 신랑이 있었는데, 그는 남들이 장가가서 즐겨하는 방사는 물론 여자의 옥문이 어디 있으며 무엇에 쓰는 것인지도 제대로 몰랐다. 하루는 그의 친구에게 살짝 물어 보았다.

『여보게, 옥문이란 어떤 거며 무엇에 쓰는 건지 아는가? 좀 가르쳐 주게나.』

그 말을 들은 친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놈아, 그래 옥문도 모르며 장가는 왜 갔으며, 그래 그런 재미도 모르고 이 세상에 산단 말인가. 한턱 톡톡히 내게, 내 그러면 가르쳐 주지.』『가르쳐 주면 내다 뿐인가. 그런 염려말게, 틀림없다니깐.』

『그래 틀림없지, 몇 되나 낼 건가? 우리가 모두 실컷 먹고 남아야 해. 알지……그럼 이리 와, 내 가르쳐주지. 여자의 옥문은 이렇게 송편같이 생겼단 말이야. 그리고 이 언덕에는 검은 털이 나고, 이 가장자리는 붉고 가운데는 궁기 있는데 그 궁게 자네의 그 연장을 넣어 보게나, 그러면 알 걸세. 이 술 몇 되 몇 말이 아깝지 않다는 걸. 그야 이 세상에서 둘도 없지,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저 푸른 하늘을 맘대로 잘아다닌다 해도 그 재미만은 못할 걸세. 이제 알겠나.』

『어이 고맙네, 이 은혜는 죽어도 있지 않겠네.』

봄날 달빛이 희미한 어느 날 밤 신랑의 가슴은 두근대었다.

『오늘 밤은 고놈의 옥문을 찾아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재미를 봐야지. 그렇지, 그 전날 친구들에게 받아 준 술값은 단단히 찾아내어야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희미한 달빛 따라 내실로 들어갔다. 내실에는 과연 언덕에 검은 털이 나고 송편같이 생긴 것이 가장자리는 붉은 것이 있었다.

『아! 이것이 정녕 옥문이로구나. 가만 있자, 내 연장을 내어야지, 그리고 조 안의 고 궁에 넣어보자. 그러면 아!』

눈을 실근히 감고 가만가만 그 궁에 넣었다. 그러나 그 반응은 의외였다. 그것은 마누라의 옥문이 아니고 장인의 입이었으니말이다. 밑에서 퇴퇴하는 장인의 몸부림을 보자, 신랑은 연장을 빼어 옷 입을 겨를도 없이 부랴부랴 도망을 쳐 부엌으로 가서 숨을 곳을 찾다가 마침 큼직한 반상이 있기에 그 밑에 들어가 숨었다. 장인은 깜짝 놀라 깨어나 계집종을 불러 꾸짖었다.

『이년들아, 간고기를 어디에 두었기에 고양이에게 물려 보냈느냐? 그 간고기를 물고 내 입 위를 지나가지 않느냐, 고양이를 잡자.』

하면서 큼직한 막대기를 찾아 쥐고,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마침 부엌에 이르러 손을 소반 아래 넣었다가, 우연히 신랑의 경두를 만지게 되었다. 아직 침이 마르지 않은 때라 손에 뭉크레 묻었다.

『야 이년들아, 내일 아침 조반국은 난 먹지 않으련다. 젓동이 마개를 막지 않아 내음이 코를 찌르는구나.』

신랑은 위기를 겨우 면하여 자리에 돌아와 자고, 이틑날 다시 그 친구들을 찾아가서,

『애끼 이 사람들, 사람을 속여도 그렇게 속이는 법이 어디 있더. 내가 밤에 실험하니 전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 아닌가, 애끼 이 사람들.』

하고 항의하여 오니 친구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것을 어떻게 가르쳐야 바로 가르쳐 주나.』

『아 이사람아, 빛깔에 다소 차이가 있을지 모르니, 오늘밤에 더 붉은 것을 찾아보게. 그러면 틀림없을 걸세, 알았는가? 어젯밤보다 더 붉은 것을 찾아가지고 해보게.』

그날밤 신랑이 마루를 보니 붉은 것이 은은하게 보이는데 어젯밤의 그것보다는 분명히 더 붉었다.

『옳다, 조것이 분명 옥문이로구나.』

하고 옷을 벗어 던지고 슬금슬금 기어가서 붉은 한 가운데쯤하여 푹 집어 넣었다.

『앗! 뜨거.』

하고 두 손으로 움켜쥐고 도망쳐 뒤뜨르이 월계화 숲속으로 마구 달려 갔으니, 그것은 옥문이 아니라 계집종들이 다리미질하다 남은 숯불이었으니 신랑의 연장이 완전할 리 없었다. 게다가 월계화 숲에서 쓰라림을 견디다 못하여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하였으므로 불에 데어 헌 데에 월계화 꽃잎이 붙어 빈데가 없었다.
 이튿날, 신랑이 헛간에 가서 그것을 자세히 보니 누른 꽃잎이 묻어 볼꼴이 사나와 두 손으로 움켜 쥐고 하나하나 꽃잎을 떼어내고 있는데, 별안간 장모가 들어오다가 그 꼴을 보고 신랑을 부르니 신랑은 깜짝놀라 도망쳐 버렸다. 장모는 어처구니가 없어 안방에 가서 장인과 마주앉아서 말하기를,

『남의 자식을 귀여워하는 것은 도시 헛일이란 예말이 과연 옳구료. 내가 헛간 앞을 지나다 마침 신랑을 보니 꾀꼬리를 잡아서 날래를 뜯고 있기에 우는 애기 주라 하려고 부르니 아니 그걸 무엇이라고 숨겨 쥐고 도망가 버리잖아요. 남의 자식은 소용없는 것, 귀여워한다는 건 도시 헛일이오.』

 

 

 

 

春前難出(춘전난출)


 

  홍풍헌(洪風憲)의 처가 음모(陰毛)가 많았더니 추운 겨울밤에 얼음 위에서 오줌을 눌새, 그 터럭이 얼음과 더불어 함께 얼어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하여 일어날 수 없는지라 큰 소리로 부르짖었더니 풍헌이 놀라 일어나 머리를 낮추어 입김으로 불어 얼어붙은 음모를 녹이려 할새, 날씨가 하도 추워 풍헌의 수염마저 그만 땅에 얼어붙어 풍헌도 일어나지 못하게 된지라 풍헌의 입이 그 처의 음문(陰門)과 서로 향하여 엎드려 있었다. 날이 새어 이웃집 김약정(金約正)이 문밖에 찾아오거늘,
  『관청 일이 비록 무거우나 나는 해동하기 전에는 출입키 어려우니, 그대는 이 뜻으로 관가에 고하여 나의 소임을 갈게 하라. 명춘 이후로는 권농(勸農)을 하시더라도, 내 마땅히 따라가리라.』
하고 풍헌이 말하더라.

 

 

 

 

  치노호첩(癡奴護妾)

 

 어느 선비가 예쁜 첩을 하나 두었는데, 하루는 첩이 고향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하므로 선비는,

『남녀간의 음사(淫事)를 알지 못하는 자로 하여금 첩을 호행케 하라.』하고 생각하며 여러 종들을 불러,

『너희들은 옥문(玉門)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한즉 여러 종들이 웃으면서 대답치 않더니, 한 어리석은 종놈이 있어, 그는 겉으론 소박(素朴)한 체하나 속으로 엉큼하여 졸연히 대답해 가로되,『그것이야말로 바로 양미간에 있읍지요.』

하고 대답하니 선비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그로 하여금 첩의 호행을 맡기게 되었다. 첩과 종이 집을 떠나 한 큰 냇가에 당도하였는데, 첩은 종으로 하여금 말안장을 풀게 하고, 잠깐 쉬게 하는데, 그 동안 종은 벌거벗고 개울 속에서 미역을 감거늘, 첩이 종놈의 양물을 문득 보니 워낙 크고 좋음에 반하여 희롱해 가로되,

『네 두 다리 사이에 고기로 된 막대기 같은 것이 있으니 그게 대체 무엇이냐?』

종놈이 가로되,

『날 때부터 혹부리 같은 것이 점점 돋아나니 오늘날 이만큼 컸습니다.』하니 첩이 가로되,

『나도 또 날 때부터 양다리 사이에 작은 옴폭이 생겼더니, 점점 커서 지금은 깊은 구멍이 되었으니 우리 너의 그 뾰족한 것을 나의 옴폭 패인 곳에 넣으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하며, 드디어 서로 간통하게 되었다.

 선비는 어리석은 종놈을 시켜 아름다운 첩을 호송시키기는 하였으나, 마음에 일만의 의심을 어쩔 수 없어 가만히 뒤를 밟다가 산꼭대기에 올라 두 사람이 하는 짓을 보니, 그 첩이 종놈과 함께 숲속에 가리어 운우(雲雨)가 바야흐로 무르익을 새, 분기가 탱천하여 크게 고함치며 산을 내려오면서 가로되,

『방금 무슨 짓을 했느냐?』

하니 종놈이 울면서 고해 가로되,

『낭자께서 저 끊어진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고로 소인이 낭자의 옥체에 한 곳이라도 상처가 없게 하고자 해서 받들어 모실 새, 오직 배곱 아래 두어 치 되는 곳에 한 치쯤 되는 구멍이 있으니 그 깊이를 가히 측량할 수 없는지라. 혹시 풍독(風毒)이라도 입으시면 어쩌나 하고 겁이 나서 곧 지금 그것을 보철(補綴)하는 중이로소이다.』

한즉 선비가 기꺼이 가로되,

『진실한지고……너의 어리석음이여! 천생의 구멍이어늘, 삼가하여 손대지 말라.』하였다 한다.

 

 

 

 

    청부독과(菁父毒果)

 

 충주에 있는 어떤 산사를 지키는 중이 있었다. 그 중은 물건을 탐하고도 몹시 인색하였다. 한 사미(沙彌)를 길렀으나 남은 대궁도 먹이지 않았다. 그 중은 일찌기 깊은 산중에서 시간을 알아야겠다는 구실로써 닭 몇 마리를 기르면서 달걀을 삶아 놓고는 사미가 잠이 깊이 든 뒤에 혼자서 먹는 것이었다. 사미는 거짓 모르는 듯이,

『스님께서 잡수시는 물건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은즉,

『무우 뿌리지 뭐야.』

하고 답하였다. 어느 날 주지가 잠을 깨어 사미를 부르면서,

『밤이 어떻게 되었어?』

하고 물었다. 때마침 새벽 닭이 홰를 치면서 <꼬끼오>하고는 우는 것이었다. 사미는,

『이 밤이 벌써 깊어서 무우 뿌리 아버지가 울었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또 어느 날 과수원 감이 붉게 익었다. 주지는 감을 따서 광주리 속에 간직하여 들보 위에 숨겨 두고 목이 마르면 가만히 빨곤 하는 것이었다.

사미는 또 그게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다. 주지는,

『이건 독한 과실인데, 아이들이 먹으면 혀가 타서 죽은 것이야.』

하고 설명을 하였다.

어느 날, 일이 있어서 밖을 나갈 제 사미로 하여금 방을 지키게 하였다. 사미는 댓가지로써 들보 위의 감 광주리를 낚아 내려서 멋대로 삼키고는 차를 가는 맷돌인 차년(茶 )으로써 꿀단지를 두들겨 깨친 뒤에 나무 위에 올라앉아서 주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주지가 급기야 돌아와 보니, 꿀물이 방에 가득 차고 감 광주리는 땅 위에 떨어져 있었다. 주지는 크게 노하여 막대를 메고 나무 밑에 이르러서,

『빨리 내려오려무나.』

하고 거듭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사미는,

『소자 불민하여 마침 차년을 옮기다가 잘못하여 꿀단지를 깨뜨리고는 황공하여 죽기를 결심하여 목을 달려니 노끈이 없고, 목을 찌르려니 칼이 없으므로 온 광주리의 독과를 다 삼켰으나, 완악(頑惡)한 이 목숨이 끊기지를 않기에 이 나무 위로 올라 한번 죽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주지는 웃으면서 놓아 주었다.

 

 

 

   계경주지(繫頸住持)

 

 금산사(金山寺)에는 여러 여중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화라고 하는 여중은 음탕하고도 교묘하기 짝이 없어서 여러 차례 사람을 매혹시켰었다. 주지 혜능이 이에 분개하여 모든 승려를 모아 놓고,

『우리는 의당히 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할 것이니 어찌 한 아녀자에게 더럽힌 바가 되겠는가.』

하고 인화를 쫓아 버리고는 다만 남승으로 하여금 음식과 의복을 맡게 하여 도장이 맑고 정숙하게 되었다.

어느 날 혜능이 절 문을 나서 마침 인화의 집앞을 지나쳤었다. 인화가 울타리 틈으로 엿보고는,

『이 중놈이야말로 낚기가 쉽겠구나.』

하고는 장담을 하는 것이었다. 뭇 중은 그의 말을 듣고서,

『네가 만일에 이 스님을 낚는다면 이 절의 전토(全土) 일체(一切)를 너에게 주렷다.』

하였다. 인화는,

『그러지. 내 의당히 이 중놈의 목을 절 앞 커다란 나무 밑에 매어달 것이니, 그대들은 미리 와서 기다리려무나.』

하고는 곧장 머리를 땋고<효경(孝經))>을 옆에 끼고 혜능을 찾았었다. 혜능은 그의 얼굴이 예쁨을 보고서,

『넌 누구 집 아들이냐?』

하고 물었었다. 인화는,『

저는 아무 곳에 살고 있는 선비집 아들이온대, 전임 주지께 글을 배웠더니 폐업한 지 벌써 오래 되었으므로 감히 와서 뵙는 것이랍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혜능은 인화로 하여금 그의 앞에서 글을 읽게 하였을 제 경문의 구두 떼는 것이 몹시 분명하고 목청이 청랑하였으므로 혜능은,

『가히 가르칠 수 있구나.』

하여 크게 기뻐하고는 이내 유숙을 시켰었다.

인화는 밤 들어서 거짓으로 섬어( 語)를 짓는 것이었다.

혜능이 불러 자기의 잠자리로 끌어들이고 보니, 곧 아리따운 한 여인이었다. 혜능은,

『에이크 이게 웬일이야.』

하고 놀라는 것이었다. 그제야 인화는,

『나는 곧 인화입니다. 사내와 계집 사이의 커다란 정욕은 곧 천지가 물건을 점지하신 참된 마음이었으므로 옛날 아난(阿難)은 마등가녀(摩登迦女)란 음녀에게 혼미(혼미(昏迷)하였고, 나한(羅漢)은 운간(雲間)에 떨어졌거늘, 하물며 스님은 그 두 분에게 미치지 못하겠습니까.』

하여 혜능을 매혹시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혜능은,

『애석도 하구나. 이제 나의 법계로 이룩된 몸을 헐게 되었구나.』

하고는 곧 서로 정교를 통하게 되었을 제, 인화는 거짓 배가 아픈 시늉을 하여 그 소리가 문 밖으로 나는 것이었다. 혜능은 남들이 알까 보아 두려워하여 다만 제입으로써 인화의 입에다 맞추어 소리를 방지할 것을 꾀하였다. 인화는,

『이제는 병이 급하니, 밤이 어둡거든 나를 업어서 절 문 밖 구목나무 밑에다 버려 둔다면 밝은 아침에 엉금엉금 기어서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혜능은 그의 말과 같이 하여 인화를 등에다 업고 인화로 하여금 두 손을 뽑아서 그의 목덜미를 껴안게 하고 절문을 나가는 그 찰나였다. 인화는 짐짓 두 손의 힘이 풀어진 듯이 하여 몸을 땅 위에 떨어뜨리고는,

『아이구, 매는 부르고 등은 높아서 아무리 손으로 잡아도 아니 되니 허리띠를 풀어서 스님 목덜미 앞에다 두르고 두 손으로써 잡는다면 떨어지지 아니할 듯합니다.』

하고 통성을 내는 것이었다. 혜능은 또 그의 말하는 대로 하여 구목나무 밑까지 이르니, 뭇 중은 이미 앉아서 대기하는 것이었다.
 혜능이 창황망조(蒼黃罔措)하는 표정을 짓는 순간에 벌떡 일어나서 허리띠를 잡아당겨 혜능의 목을 졸라매어 이끌고는 뭇 중의 앞을 다가서면서,『이것이 이 중놈의 목을 매어단 것이 아니고 뭐냐.』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뭇 중은 이를 보고서 크게 놀라서 그들의 전토를 인화에게 넘겨 주었었다.
  

 

 


     서입기혈(鼠入其穴)

 

 어느 시골에 중년 과부가 살았다. 그 과부의 화용설부(花容雪膚)가 가히 남자들로 하여금 유혹하기가 쉬워서 문득 한번 바라봄에 남자들로 하여금 심신이 가히 표탕(飄蕩)케 하는지라. 살기는 어렵지 않으나 자녀를 하나도 두지 아니하여 다못 떠꺼머리 총각 한 놈을 머슴으로 데리고 있었다.

그 총각으로 말하면 워낙 천생이 우둔하고 암매하여 숙맥을 분간치 못하는 머슴이었다. 그러므로 이 과부집에는 가장 적격인 머슴살이였다.
 어느 날, 과부가 우연히 바라본즉 자기의 침실 한 모퉁이에 조그만 구멍이 있는데 쥐 한마라기 그리로 들락날락하거늘, 이튿날 밤에 과부가 그 쥐를 잡고자 하여 치마를 들고 쥐무멍에 앉아서 뜨거운 물을 쥐구멍에 쏟아 넣었겠다. 쥐가 열탕에 이길 수 없어 뛰쳐나오다 문득 한 구멍을 발견하고,

『여기 숨었으면 안성마춤이겠다.』

하고 과부의 옥문(玉門)속으로 뛰어들어가니, 구멍이 좁고 어두워서 동서의 방향을 가릴 수 없었으므로 더욱 깊은 구멍이 없나 하고 머리를 들로 뺑뺑 돌아가지 과부가 비로소 쾌감을 느껴 미친 듯 또한 취한 듯 하는데, 하도 오래 그러하니 지쳐서 그 쥐를 내어몰고자 하나 할 수 없는지라.

 이로써 무한히 고민하다가 급히 머슴을 부르니, 머슴은 깊은 밤에 부른 이유를 알지 못하여 졸음에 지친 눈을 비비며 안방으로 들어간즉, 과부가 벗은 채 침상 위에 누워 가만히 추파를 보내고, 애교있는 말과 아리따운 웃음으로 손잡고 옷을 벗기고 함께 이불 속으로 들어가니, 머슴을 처음 당하는 일이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또 음양의 일을 모르는지라 과부가 몸을 끌어안고 누우매 그제야 이치를 알고 서로 운우(雲雨)가 바야흐로 무르익어 갈 때, 쥐란 놈이 가만히 바라보니, 막대기 같은 것이 들락날락하면서 자기를 두들기는지라.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다가 쫓기어 이젠 어찌할 수 없음에 발악하여 힘을 다해 그 대가리를 깨문즉, 머슴이 크게 놀라 소리를 지르고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과부의 풍에서 빠져 나가니, 쥐도 또한 놀라고 두려워서 그 구멍으로부터 뛰쳐나왔겠다. 이후로 머슴이 가로되,

『여자의 배 가운데는 반드시 깨무는 쥐가 있으니 두렵도다.』

하고 평생을 여색에 가까이 하지 않았다.

 

 

 

避婦出外(유뷰외출)

 

  촌사람이 며느리를 얻었는데 자색(姿色)이 아름다웠다.

그런데 아들이 초립동인데 비하여 며느리는 나이가 찼는데 혼인이 지난 뒤 날을 가려 며느리를 데려올새, 그 사돈도 또한 따라갔다.

이웃을 청하여 신부를 맞이할새, 이른바 신랑이 자리에 않고 빈객이 또한 만당이라 이때 신랑이 여러 나그네 앞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계집애가 오는구나, 오는구나. 일전에 저 팔로 나를 눕히더니 꽉 끌어안고, 다리로 나를 끼더니 무겁게 내리 누른 후에, 제 오줌누는 물건(玉門)으로 밤새껏 문지르며 혹은 나의 배 위에 타기도 하고, 숨이 막혀 헐떡헐떡거리며, 씩씩거리면서 사람을 못 견디게 단련시키더니 어찌하여 왔느냐? 나를 또 붙잡아 가려고……. 어이 무서워.』
하면서 곧 밖으로 달아나는데 만좌가 그 사돈의 체면을 보아 자못 묵묵히 말이 없더라.

 

 

 

君是良醫(군시양의)

 

 어떤 젊은 과부 하나가 강릉(江陵)기생 매월(梅月)이와 이웃삼아 살고 있었다.

매월은 그 자색과 명창으로써 한때에 이름이 높았으므로 일대의 재사(才士)와 귀공자들이 모두 그 문앞으로 모여들었다.
 어느날의 일이었다. 때는 마침 여름철이었다. 매월의 온 집안이 유달리 고요하여 인기척이 없기에 과부는 괴이히 여겨 남몰래 창을 뚫고 엿보았다.
 어떤 한 청년이 적삼과 고의를 다 벗은 몸으로 매월의 가는 허리를 껴안은 채 구진구퇴(九進九退)의 묘법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기생의 여러 가지 교태와 사내놈의 이러한 음탕을 평생 처음으로 본 과부인만큼 그 청년의 활기를 보자 음탕한 마음이 불꽃처럼 일어 억제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과부는 스스로 애무하였다. 그의 코에는 저절로 감탕(甘湯)의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10여 차를 하고 보니, 목구멍이 막혀서 말을 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때마침 이웃집 할머니가 지나치다가 들어와서 그 꼴을 보고는 그 연유를 물었으나, 목멘 듯이 대답을 못하고는 다만 숨소리만 나는 것이 아닌가. 마음으로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음을 짐작하고 묻기를,
 『색시, 만일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언문 글자로 써서 뵈는 것이 어때?』
하고 권고를 하는 것이었다. 과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써 보였다. 할머니는 그 사연을 보고 웃으면서,
 『상말에 이르기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난 병은 그것으로써 고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 않았소? 이 병엔 건강한 사내를 맞이하여 치료하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오.』
하고는 문을 나섰다. 그 동네에 우생(禹生)이란 노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한 탓으로 나이가 서른이 넘어도 아직 장가를 들지 못한 형편이었다.
 할머니가 우생을 보고는,
 『아무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그대가 그 병을 치료할 자신이 있겠는가. 안일 그렇게 된다면, 그대는 없던 아내가 생기는 것이요, 그녀는 홀어미로서 남편을 얻는 것이니, 이는 실로 경사가 아닐 수 없네.』
하고 권유를 하였다. 우생은 크게 기뻤다. 곧 할머니의 뒤를 따라 과부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우생은 곧 의복을 벗은 발가숭이 몸으로 촛불이 휘황한 밑에서 멋있게 일을 베풀었다. 그녀는 병이 곧 나아 일어나면서 다음과 같은 한 마디 말을 남겨었다.
 『당신이야말로 참 양의(良醫)로군.』
  


 

執手掩口(집수엄구)

 

 어떤 한 청년이 이웃집에 살고 있는 예쁜 여인을 사랑하여 그 남편이 멀리 나간 틈을 엿보아서 억지로 달려들어 일을 치렀다.
 그녀가 그 자취가 드러날까 보아 관가에 고발을 하였다.

원이 그녀에게 심문하기를,
 『저놈이 비록 먼저 달려들었다 할손, 네가 받은 그 이유는?』
하였을 제 그녀는,
『그이가 한 손으로 저의 두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저의 입을 막고, 또 한 손으로는……그래서 소녀의 약질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답니다.』
하고 변명을 하는 것이었다. 원은,
 『천하에 무슨 세 손을 지닌 놈이 있단 말야. 이년, 무고죄(誣告罪)를 면하기 어렵구나.』
하고 거짓 화를 벌컥 내었었다. 그녀는 크게 두려워하여,
 『과연 손을 잡고 입을 막은 것은 그이의 손이지만 그것을 집어 넣은 손은 소녀의 손이었습니다.』
하고 바로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닌가. 원은 그제야 책상을 치면서 크게 웃었다.

 

 

 

 

入寺缺耳(입시결의)
 

경주(慶州)에 나이가 겨우 열 여섯 살이 된 기생이 있었다.

그의 화용월태(花容月態)는 이름이 화류계(花柳界)에 드높았다. 고을 사또의 책방으로 온 총각이 그와 함께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갈 제, 총각 역시 아버지를 따라가게 되었다.

기생이 서로 놓치기를 어려워하여 반일의 시간을 허비하여 따르다가 헤어지는 마당에 명주 적삼을 벗어서 주면서,
 『뒷 기약이 아득하니, 이것으로 정을 표하리다.』
하기에 총각 역시 붉은 중의를 벗어서 주면서 서로 작별을 하였다.

기생이 눈물을 머금으면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릇 산길로 들어 해가 또 저무는 것이었다. 한 산사에 이르러 스스로 생각하기를,
 『여인의 몸으로서 절간에 드는 것이 불편하리라.』
하고는 곧 아까 총각에게 받았던 옷을 갈아 입고 동자(童子)의 시늉을 하고 절에 들어갔다. 여러 중이 그를 보고는,
 『어쿠, 예쁘기도 하이. 이런 동자가 어디에서 왔을까?』
하고 다투어 방으로 들었다. 밤이 되자 중이,
 『동자는 산승이 후정(後庭) 놀음을 좋아하는 줄을 몰랐지. 어떤 스님과 같이 자려 하나?』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는 몸을 더럽힐까 보아서 이윽고 생각하기를,
 <저 늙은 중이 나이도 많고 기력도 쇠진하였을 테니 반드시 범하지 못할 것이야.>
하고는 드디어 입을 열어,
 『저 선사(禪師)를 모시고 자려 하오.』
하는 것이었다. 여러 중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놀라운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드디어 밤은 깊었다. 늙은 중이 그를 껴안고 그 뒷장난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기생이 늙은 중의 활력이 대단함을 알고서 정념(情念)이 별안간에 일어나 그것에 응하였다

. 늙은이는 정담이 극에 이르자 당황하여 기생의 귀를 씹어 버려 귀가 달아나 버렸다.
 기생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 도망하였는데, 이 일로 기생은 <대손(大損)>이라고 불리었다.

 

 

 

 

妓評詩律(기평시율)
 

부안(扶安) 기생 계월(桂月)이 시 읊기를 잘하고 노래와 거문고에 능하였다.

그는 스스로 매창(梅窓)이라 호(號)를 짓고 뽑혀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수재와 귀공자들이 모두 다투어 먼저 맞이하여 시를 수창(酬唱)하고 논평하였다.
 어느날의 일이었다. 유(柳)라는 선비가 그를 찾았을제, 김(金)·최(崔) 두 사람이 먼저 자리에 앉았는데 둘은 모두 광협(狂俠)으로 자부하였다.

계월이 술자리를 벌여 그들을 접대하였다. 술이 반쯤 취하자 셋이 서로 계월을 독점하려는 기색이 나타나는 것이다. 계월은 웃으면서,
 『당신들이 각기 풍류장시(風流場詩)를 외어 한 차례 기쁨을 뽑는 것이 어떨까요. 만일에 제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글귀가 있다면 오늘 저녁에 모시기로 하리다. 먼저 천기(賤妓)들의 전통(傳誦)하는 시를 외어 드리리다.』
하고 다음과 같은 두 절의 시를 읊는 것이었다.

  옥도곤 흰 팔은 여러 사내 베개요,
  붉은 그 입술은 여러 손님 맛 보았소.
  네 몸이 보아하니 서릿날이 아니어늘
  어이하여 나의 애를 끊고 가는 거요.

  三경 밝은 달엔 발굽이 춤을 추고
  일진(一陣) 바람결에 이불이 펄렁이네
  이때를 당하여 무한한 그 맛은
  오직 두 사람만이 함께 누릴 것이오.

 그들 세 사람은 모두 응낙하였다. 김이 먼저 칠언절귀(七言絶句) 한 수를 읊었다.

  창 밖 三경에 가는 비 내릴 제
  두 사람 그 마음을 둘이서만 아오리다.
  새 정이 흡족하쟎아 날이 장차 새려 하니
  다시금 소매 잡아 뒷 기약을 물었었소.    

 최가 그 뒤를 이어서 불렀다.

  껴안고 사창(紗窓)을 향해 쉬지 못할 그 일에
  반은 교태 머금은 채 반은 부끄럼을 짓는구나.
  낮은 소리 물어 오되 나를 생각하려나요
  금채(金釵)를 다시 꽂고 웃으며 머리 끄덕.

 계월은 웃으면서 비평하기를,
 『앞의 것은 너무나 옹졸하고, 뒤의 것은 약간 묘하긴 하나, 수법이 모두 낮으니 족히 듣잘 것이 없겠소. 대체 칠언절귀는 비교적 쉽지마는 율시는 더욱 어려우니, 저는 그 어려운 것을 취하려 합니다.』
하니 김이 먼저 물렀다.

   아리따운 그 아가씨 나이는 겨우 열 다섯에
  온 서울에 이름 가득 노래 불러 제일이라.
  오입장이 맺은 정은 가득 바다보다 깊어 있고
  화관(花官)의 엄한 영은 서리처럼 싸늘하이.
  난초 창 다사로와 아침 단장 재촉하고
  솔고개 바람 높자 저녁 걸음 바빳었소.
  이별할 땐 많건마는 만나기 어려우니
  양대의 비구름이 초양왕(楚襄王)을 괴롭히네.

 이 시를 본 최는,
 『이 시가 비록 아름답다 하나,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지 않아.』
하고,

  강머리에 말 세운 채 이별 짐짓 더디어라.
  양유 가장 긴 가지가 나는 몹시 미움고녀
  가인은 인연 엷어 새 교태 머금고
  오입장이 정이 많아 뒷 기약을 묻는고나.
  도리꽃이 떨어지니 한식절이 다가오고
  자고(  )새 날아가니 석양이 비낄 때라.
  남포에 풀이 많고 봄 물결이 넓을 제
  마름꽃을 캐려다가 생각한 바 있었다오.

라고 읊었다. 이 시를 보고 계월은,
 『이 시는 약간의 맑은 운치가 있으나, 족히 사람을 움직일 수 없겠소.』
하고는 유를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당신은 홀로 시를 읊을 줄 모르시오?』
 『난 애초부터 글이 짧고 옛날 양구가 크기로 이름 높던 오독( 毒)의 수레바퀴를 궤던 재주가 있을 뿐이오.』
하는 것이었다. 계월은 웃으면서 답하지 않는다. 최가 화를 내면서 이르기를,
 『오늘엔 의당히 시의 잘잘못을 논할 것이 아니야!』
하매, 이 말을 들은 김은 자부하는 빛이 있어 읊기를,

  가을 밤 새기 쉬우니 길단 말늘 하지 마오.
  등불 앞에 다가앉아 비단 치마 풀어 보렴.
  외눈이 열리니 감은 동자 반짝이고
  두 가슴 합해지니 땀 냄새도 향기로와
  다리는 청구머리 물결에 헤엄치고
  허리는 잠자리라 물에 바삐 잠기더군.
  강건하기 짝이 없음 마음에 자부하기
  사랑 뿌리 깊고 얕음 임에게 묻노매라.    

 계월이 이 시를 듣고는 잘되었음을 칭도(稱道)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유는 계월로 하여금 운자를 부르라 하고 운자가 떨어지자 다음과 같이 읊었었다.

  봄빛 찾은 호탕한 선비 기운도 높을시고
  비취(翡翠) 이불 속에 아름다운 인연 있어
  옥 팔뚝을 버티니 두 다리가 우뚝하고
  붉은 구멍 꿰뚫으니 두줄이 둥글고나.
  눈매를 처음 볼 제 아득하기 안개같고
  장천을 쳐다보니 돈보다 작아지네.
  그 속에 별재미를 만약에 논하려면
  하룻밤 높은 값이 천금이 되오리라.

계월이, 이 시를 듣고 나서 탄식하기를,
 『이는 운자가 떨어지자 곧 부른 것이었으나 침석(枕席) 사이의 정태를 잘 형용하였을 뿐 아니라, 글이 극도로 호방(豪放)하고 웅건하니, 반드시 범상한 재주가 아니오니 원컨대 존어(尊御)를 듣고자 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유는,
 『나는 곧 유모(柳某)라는 선비요.』
하고 대답을 하였더니 계월은,
 『존공(尊公)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왕림하실 줄을 몰랐소이다. 이제 다행히 만나 뵈는군요.』
하고 이내 잔을 드리고 웃으면서 이르기를,
 『만일에 온 하늘로 하여금 작은 돈짝과 같이 한다면 그 값이 다만 천금에 그칠 것입니까?』
하고 또 두 선비를 향하여 이르기를,
 『당신에의 읊은 바는 한 잔의 청량음료만도 못하구료.』
하고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최·김은 모두 묵묵히 물러가 버렸다. 유는 드디어 뜻을 얻어 함께 그 밤을 세웠다.

 

 

 

設泡瞞女(설포만녀)


 어떤 중이 살고 있는 절이 인가에서 멀지 않은 지점에 있었다.
 그 동네에는 박(朴)·김(金)·이(李) 등의 성을 지닌 천호가 살고 있었다. 중이 평소에 세 천호와 서로 절친하여 자주 오가곤 하였다.
 어느날 중이 세 사람의 아내에게,
 『내가 세 형수씨를 위해서 특히 두부 잔치를 열어 드릴 테니, 수고로움을 해이지 않고 절로 올라오실 수 있는지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세 여인은 모두 응낙을 하고 약속된 날에 갔더니 중이,
 『무릇 절간에 장만하는 것은 반드시 부처님 앞에 드린 연후에 먹을 수 있답니다.』
하는 것이었다. 세 여인은 그의 말대로 부처 앞에 나아가 합장을 하고 엎드려 있었다. 중은,
 『비단 절하고 엎드려 있을 뿐이 아니라, 반드시 평생 남몰래 한 일을 솔직히 부처님 앞에 실상으로 고하지 않는다면 부처님께서 반드시 무거운 벌을 내릴 것입니다.』
하고 가르쳐 주었다. 세 여인은 난색을 보이었으나 중은 먼저 사자(使者)를 시켜 부처님의 배후에 숨었다가,
 『너희들의 간음(姦淫)한 일은 내 이미 잘 아는 바이니, 이실직고하렷다.』
하였다. 그들은 크게 놀라 박천호의 아내가 먼저,
 『전, 출가하지 않을 때 춘흥(春興)을 이기지 못하여 매일 오가전 총각과 함께 숲 속에 들어 간통을 했는데 부모께서 덮으시고 박천호에게 출가시켰답니다.』
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김천호의 아내가,
 『전, 처녀 때에 같은 동네 어떤 사내가 유혹하기를 <네가 장성하였으니 먼저 예법을 연습하여야지, 만일 그렇지 않고 첫날밤을 당하면 어떻게 감당하려나>하고 방으로 들어 일을 치렀으나, 애초엔 아무런 재미를 몰랐던 것이 날마다 연습하여 잉태가 되었을제 부모께서 산아(産兒)를 묻은 뒤에 김천호에게 출가시킨 것입니다.』
한다. 다음에는 이천호의 아내가,
 『이천호의 친구 하나가 자주 오가게 되자 저절로 서로 친근하다 보니, 잉태 생남하여 남편이 자기의 아들로 인정하고 있는 만큼 이는 저의 죄가 아니고 남편이 친구를 좋아하는 데에서 나온 폐해라고 생각될 뿐입니다.』
하고 변명을 하기에 급급하는 것이었다.
 『너희들의 음사를 내 장차 너의 남편에게 고발하련다.』
하니 그녀들은 크게 두려워하여 엎드려 애걸을 하는 것이었다. 중은 그녀들을 이끌고 내호(來戶)로 들어 차례대로 일을 치른 뒤에 보냈다.             

 

 

 

 

郞言支歲(낭언지세)

 

 어떤 선비가 재취(再娶) 장가를 들었다. 나이가 이미 여든이어서 수염과 머리칼이 다 희었다. 이 꼴을 본 장인 영감은 크게 놀랐다.
 그 이튿날이었다. 장인은 신랑에게,
 『신랑의 나이가 몇이라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신랑은 서슴지 않고,
 『스물이 넷이랍니다.』
하고 말소리가 겨우 들릴 만큼 하였다. 장인은,
 『스물 네 살 되는 청년이 어지 이리 늙었는가? 참 엉터리로군.』
하고 화를 벌컥 내는 것이었다. 신랑은,
 『그러면 마흔이 둘이랍니다.』
하고 이미 흐린 말을 짓는 것이었다. 장인은,
 『마흔 둘, 그것 역시 참된 아니구료.』
하고 굳이 따지는 것이었다. 신랑은,
 『그러면 사면이 다 스물이랍니다.』
하고 똑똑히 말하였다. 장인은,
 『그럼 여든이로군. 뜻밖에 신랑의 나이가 나보다 높군그려. 내가 처음 물었을 제, 어찌 바로 대지 않고 두 차례나 회피하였단 말이오?』
하고 따졌더니 신랑은,
 『내 애당초부터 실토하였으나 영감께서 잘 알아 듣지 못한 탓이지요. 마흔이 둘이면 여든이요, 스물이 넷도 여든 되지 않아요. 내 나이 비록 늙었지마는 아내가 잘 보양(補陽)을 하면 이해 안에 잘 부지(扶支)할 것이오.』
하고 자신이 만만함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때는 이미 그 해 섣달이 끝나는 작은 그믐날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자 모두 허리를 잡았었다.

 

 

 

 

智計妻羞(지계처수)
 

어떤 권문(權門) 재상가(宰相家)의 규수 하나가 있었다. 그는 몹시 총명하고 영리하였으며 시서와 침공(針工)에 통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하나의 결점이 있었다. 성격이 몹시 비좁아서 외통으로 뚫린 그 고집은 만일에 제 뜻대로 아니될 때는 비록 부모의 앞에서라도 화를 발칵 내곤 하였다. 그러니 그 나머지 노복들에겐 더 말할 나위 없었다.
 이러한 소문이 전파되자 문안의 수많은 귀공자들이 장가들기를 꺼리는 것이었다. 부모가 그의 혼사가 늦어짐을 걱정하여 그의 잘못된 성격을 책하면 그는 대답하기를,
 『인생이 겨우 100년이어늘 어찌 부부의 낙을 위해서 자기를 굽히고 기운을 상(傷)하게 할 수 있으리까. 다만 길이 어버이의 슬하에서 모시려 합니다.』
하고 스스로 규중(閨中)에서 늙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부모 역시 사랑에 빠져 깊이 책하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딸을 규중에서 헛되이 늙히기에는 어려웠다. 이렇게 걱정을 하는 무렵이었다. 어떤 매파(媒婆) 하나가 통혼을 해 왔는데, 그는 가난이 심하고 의탁할 곳이 없으나 문벌이 서로 알맞았으므로 재상은 곧 허혼을 하였다.
 화촉을 밝히는 그날밤이었다.
 신랑이 생각하기를,
 『어찌 사내로 태어나서 하나의 여자를 누르지 못할 수 있으리요.』
하고 한 계교(計巧)를 마련하였다. 원앙금침 속의 단꿈은 이루어졌다. 신랑은 가만히 신부의 이불 속에 똥덩이 하나를 묻어 두고 자기의 이불 속으로 돌아왔었다. 이윽고 신랑이,
 『고이하이, 고약한 냄새가 어디에서 나는지?』
하고 중얼거렸다. 이러한 신랑의 말을 수면 중에 들은 신부는 홀로 냉소를 지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점차로 자기의 이불 속에서 똥덩이가 있음을 깨닫고 얼굴이 붉고 마음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면서,
 『내 잠이 몹시 포근하여 그것이 흘러나온 것을 깨닫지 못했어요.』
하고 머리를 굽혀 말이 없는 것이었다. 신랑은 웃으면서,
 『젊은 나이에 잠에 곤하여 오물을 흘림은 역시 예사라고 생각하오. 하물며 우리 부부의 사이에 어찌 서로 혐의를 둘 것이 있겠어?』
하고는 이내 종년을 불러 께끗이 정리하였다.

이로부터 신부의 기질은 숙여들어 비록 종년들에게 책할 일이 있다 해도 마음에 그 첫날밤 일이 생각에 걸핏 떠올라 문득 함구무언하여 양순한 사람이 되곤 하였다.
 신랑이 뒤에 과거에 올라 벼슬이 판서에 올랐다. 그 동안에도 부인이 더러 불손한 일이 있을 때에는 문득 그 일을 들어 입을 열고자 하면 부인은 곧 수두상기(垂頭喪氣)를 하여 일평생 기를 죽인 채 지나고 말았다.
 전날의 신랑은 어언간 나이가 일흔이 넘어서고 아들 셋이 모두 정경(正卿)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해에 회혼의 날을 맞이하였다.
 자녀들을 앞에 세워 놓고 늙은 재상은 입을 열었다.
 『내 이제 나이가 늙어 남은 시일이 얼마 없고 이런 기쁜 자리가 마련되었으니 무슨 은위(隱諱)할 일이 있겠느냐?』
하고 그의 아들을 가리키면서,
 『너의 엄마가 처녀시절에 호방한 기개가 하늘을 찔러 그를 누를 사람이 없었으므로, 성중(城中)에 수많은 귀공자들이 모두들 장가들기를 꺼렸으나, 나홀로 구혼을 하여 첫날밤에 이러이러 하였으므로 여태가지 양순하기 짝이 없어 집안이 태평하였던 거야. 내 만일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사이에 몇 차례의 전쟁이 벌어져 부부가 제각기 흩어져 버렸을지는지도 몰랐을 거다.』
하고 말을 끝내자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의 부인은 애매하게도 5, 60년 사이를 기만 속에 살아 왔던 나머지에 이제 비로소 명백한 연유를 듣자 크게

 노하여 재상의 수염을 잡아 힘껏 발악을 하여 수염이 다 빠지자 민숭민숭한 턱 밑에서 번쩍번쩍 광채가 나는 것이었다. 그는 부끄러운 한편 노염도 생겼으나 어떻게 할 길이 없어 일어나서 사랑으로 나가버렸다. 그 이튿날 조회차(朝會次) 조반(朝班)에 올랐을 때 임금이 그의 수염이 하나도 없음을 보고는 놀라 묻기를,
『경(卿)은 어인 일로 하룻밤 사이에 그 꼴이 되었는고?』
하였다. 재상은 곧 그 실사(實事)로써 어전에 주달하였다. 임금은 크게 노하여,
『대신의 체중한 처지에 어찌 이런 무례한 아내의 소위가 있을 수 있단 말인고?』
하고는 곧 사약을 내렸었다. 금부도사가 약사발을 받들고 그의 집에 이르렀다. 온 집안이 황황히 부인에게 여쭈었더니 부인은,
『나의 죄는 면하기 어렵고 위의 뜻을 어찌 거역하리.』
하고는 곧 뜨락으로 내려 꿇어앉아 달갑게 약그릇을 받아 한번 들켜 다하고 보니, 이건 곧 이진탕(二陳湯)이었다. 금부도사가 복명을 한 뒤에 재상은 그 지난 일을 상세히 주달하였더니 임금은 크게 웃으면서,
『참으로 여중호걸이군. 경의 슬기가 아니었던들 누르기는 어려웠을 거야.』  
하고 차탄의 소리를 거듭하였다.

 

 

 

 

松茸接神(송용접신)


 

 어떤 청상과부가 여종 하나를 데리고 있었는데, 여종 역시 남편을 여의고 가긍(可矜)하게 되었다.

어느날 과부는 여종에게 이르기를,
『넌 천한 몸이어늘 어찌 개가(改嫁)를 하지 않나?』
하였을 제 여종은,
『아씨께서 홀로 계시는데, 제가 어찌 사내를 얻어 홀로 즐길 수 있으리까. 이 몸은 죽도록 다시금 시집을 가지 않으렵니다.』
하고 맹세를 하는 것이었다. 과부는 그의 곧은 절개를 기특히 여겼었다.
 때는 마침 중추의 가절이었다. 동네에 송이(松茸)장수가 지나치기에 과부는 여종으로 하여금 그 중 특히 길고 커다란 놈 서너개를 골라 잡아 갖고 오도록 했다.
 그들 둘이 서로 송이의 생김새를 살펴보니 흡사 그 물건과 꼴이 같은 것이었다. 과부는,
『이야말로 커다란 송이의 값의 다과를 묻지 말고 모두를 사 갖고 오려무나.』
하는 것이었다. 여종은 곧 사 갖고 들어오자 춘정을 금하지 못한 채 피차 둘이 그것으로 놀음을 시작하여 마치 남녀간의 행사처럼 하고 보니, 그 흥취가 극히 아름다왔다. 곧 그놈을 시렁 위에 얹어 놓고 이름을 <덕거동(德巨動)>이라 불러 조금 한가한 짬이 생기면 둘이 서로 음농(淫弄)을 하곤 하였다.
 이때 체 장수가 바깥에서 체를 고치고 있을 제 과부는 또 <덕거동>을 불러 내어 음농을 시작하였다. 체 장수가 일을 끝낸 뒤에 여종이 오래도록 나오지 않기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안에서 아까 <덕거동>을 부르는 것으로 보아서 이는 필시 아이의 이름일 것이야.』
하고는 곧,『덕거동아, 빨리 나오지 않느냐!』
하고 크게 고함을 쳤었다. 말이 끝나기 전에 어떤 물건 하나가 돌출하여 체 장수를 때려 누이고는 줄곧 그의 북도(北道)를 찌르는 것이 아닌가. 체 장수는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크게 놀라 체 고친 값도 추심(推尋)하기 전에 몸만 빠뜨려 도주를 하였다.
 그 뒤 어느날 그는 동료 체 장수를 만나서 그 이야기를 했다. 그 동료는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자네, 그 말이 허망하이. 세상에 어찌 그럴 이치가 있나?』
하고 믿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자네, 만일에 내 말을 믿지 않거든 곧 그 집을 찾아서 앞날 체 고친 값을 받아 쓰더라도 난 조금도 불평을 하지 않을 테야.』
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곧 그 과부의 집을 찾아서 곧 <덕거동>을 불렀더니 말이 끝나지 못해서 별안간 한 물건이 돌출하여 그를 때려 누이고는 방망이처럼 생긴 물건이 줄곧 그의 북도를 찌르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 살려 다오.』
라고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체 장수가 멀리 서서 그 꼴을 바라보다가 비웃는 어조로,
『만일에 그다지 모질고 독하지 않다면 어찌 가벼이 체 고친 값을 네게 양보하겠다고 했을꼬?』
하고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줄행랑을 쳤다.

 

 

 

 

 因病奸婢(인병간비)


 

 어떤 재상의 처가집에 어린 여종이 있었다. 이름은 향월(向月)이요, 나이는 一八세에 제법 자색을 지녔다.
 재상은 늘 향월을 사랑해 보려 하였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였었다.

때마침 향월이 초학(草 )에 걸려 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그때 재상의 벼슬은 내국의 제조(提調)였다. 하루는 그의 장모가 사위인 재상에게 청하기를,
『우리 향월이 학질로써 이다지 고생하는데 내국에는 반드시 좋은 약이 있을 것이니 한번 약을 구해서 치료해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기에 그는,
『그럼 어느날 어느 때 그 병이 더 심해지는지요?』
하고 묻자 장모는,
『바로 내일이라네.』
하고 대답하니 그 재상은,
『그럼, 내일 공무를 끝낸 뒤에 좋은 약을 갖고 나올테니, 뒷동산 깊숙한 곳에 커다란 병풍을 둘러 자리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 향월을 눕히고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면 제가 곧 치료해 드리리다.』
하는 것이었다. 장모는 곧 그의 말과 같이 준비하였다. 그 이튿날 재상이 뒷동산 속으로 들어가 불문곡직하고 향월을 껴안았다. 향월이 크게 두려워하여 땀이 흘러 등을 적시는 것이다. 재상은,
『학질이란 몹쓸 병인만큼 이렇게 가혹히 다루지 않는다면 결코 고치기 어려운 법이니라.』
하고 거듭 일을 치르려 할 때 향월은,
『만일 부인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반드시 제게 벌을 내릴 것이니, 전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지 않아. 이 일은 부인이 시킨 일이니라.』
하고 일을 다시금 시작하여 흥이 무르녹아지자 향월은 재상의 허리를 부둥켜 안으면서,
『이젠 부인께서 알고 죽인다 하여도 아무런 원한이 없소이다.』
하여 학질이 모르는 사이에 나은 줄을 깨닫지 못했다. 그 후 그의 장모가 역시 학질을 만나서 사위로 하여금 치료를 하게 했더니 사위는,
『이건 장인 영감이 아니고선 결코 치료하지 못한답니다.』
하고 웃음을 머금었다.

 

 

 

 

 嘲婦翁(조부옹)

 

 어떤 집안에 벌어진 일이다. 장인과 사위가 위아랫방을 쓰고 있었다. 어느날 밤, 장인이 그의 아내와 함께 그 일을 시작하여 흥미가 바야흐로 짙어지게 되자 장인이 장모에게 하는 말이,
『난, 두 귀가 완전히 막힌 듯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소그려.』
하자 장모는,
『난, 온 사지가 풀어지는 것 같군요.』
하는 것이다. 두 노인이 일을 끝내고 장모가 말하기를,
『우리들이 말한 것을 사위가 반드시 들었을 것인데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옳지 않겠소.』
하고 헌책(獻策)을 했다. 그 이튿날 장인이 사위더러 타이르기를,
『세속 사람들이 해학(諧謔)을 즐기는 모양이나 그대는 아예 그러지 않기를 바라네.』
하자 사위는 서슴지 않고,
『전 절대로 그런 것은 모릅니다. 남의 과실을 들으며 두 귀는 막힌 듯이, 사지는 풀어지는듯 하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장인은 어이가 없어 다시는 말을 계속하지 못하였다.

 

 

 

 

 自願稗將(자원패장)

 

그전에 어떤 사람이 언제나 집안에 들어박혀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는 것 업이 술밥만 채우니 가계가 날로 곤궁하여졌다. 그 부인은 참다 못해 그 남편더러 말하였다.
『아 여보 옛날 말에 이르기를 남자는 동물이라. 동하면 득도 보고 해도 본다는데 당신은 밤낮 안방에만 들어박혀 있으니 참 딱도 하우. 첩이 듣기에 가까운 곳에 김판서 집이 있는데 그 집은 세도집이라 하니 한번 찾아가서 뵙고 그 문하로라도 들어가는 것이 어떠하우.』
 부인은 그렇게 하라고 밤낮으로 졸랐다. 남자는 하는 수 없이 부인이 내어주는 옷으로 깔끔히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오기는 하였으나. 아무도 주선해주는 사람도 없이 김판서 집엘 가기는 쑥스러웠고, 설사 가본들 요즈음 세상이 어떤 세상이라고 문하에 들어갔다고 하여 쉬 벼슬자리를 하나 내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집의 옅은 소견에 지나지 않거니와 쓸데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하여 집엘 돌아가면 또 계집이 들볶을 것이 아닌가. 다른 곳에라도 놀다가 해진 후에 돌아가서 김판서 집에서 놀다가 왔다고 하면 제가 어찌 알겠는가. 남자는 발걸음이 내키는 대로 걸어가니 약국이 하나 있는데 몇 사람이 모여 한가히 장기를 두며 놀고 있었다. 남자는 거기에 들어가서 주인을 찾아 인사를 하고,
『내가 놀 곳이 없어 심심하여 못 견디던 차에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이곳에 가면 주인장이 손대접을 잘한다기에 찾아왔으니 다음부터 소일코자 하온즉, 특히 허락해 주십소서.』
 주인도 별로 하는 일이 없고 같이 소일할 사람이 없던 차에 그 사람을 보니 차림도 깨끗하고 상냥해 보이므로 쾌히 승낙하였다. 그곳에서 종일토록 한담을 바꾸면서 놀다가 해가 진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밤에 그 처가 그날의 상황을 물으므로 남자는 거짓말로 얘기했다.
 『그대 말과 같이 김판서 대감을 찾아가 뵌즉, 한번 보시고 매우 반가이 하면서 전자무리보다 훨씬 좋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사랑하기 비길 데 없더니 대감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평안감사로 나갈 때는 비장으로 데려가주마 하시니 그 후대가 이렇소.』
하니 그 처는 희색이 만면하여 그 후로부터는 자기 치마는 제대로 입지 못할망정 남자의 의복과 갓망근은 더욱 선명히 하여 주었다. 그러나 남자는 한결같이 김판서 집에는 가질 않고 약국집에서 소일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수년 동안 계속하여 오는 터이라, 김판서 대문이 어느 곳 어디에 어떻게 생겼는지조차도 몰랐다. 하루는 그 처가 집에 있으니 이웃에 사는 표모(漂母)가 우연히 놀러왔다.
 『요사이 살기가 어떠한가?』
하고 물으니 노파가 기뻐하면서,
 『우리집 아이가 김판서댁 대솔(帶率)로 있더니 이제 대감이 평안감사로 승차하시니 그 애도 소망이 있어 보입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처는 놀라면서,
 『아니 김판서라니 아무 골에 사는 함자가 아무 자이고 연세는 예순이나 되었을까 하는 그 어른 말인가?』
 『네, 네, 그럼요. 낭자가 어찌 그렇게 잘 아시나이까?』
 『내가 어찌 그 어른을 모른단 말인가. 나으리가 익히 아는 양반이신데.』
 처는 이제야 행운이 왔나 보다 하고 기뻐하였다. 그날밤 남자가 집에 돌아오자 치하하여 이르기를,
 『대감이 이제 평안감사가 되었으니 당신도 또한 비장이 아니오.』
 남자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 어물어물 대답하였다.
 『그대 말과 같이 되었소.』
 처는 더욱 기뻐하면서,
 『그럼 치행은 각자가 부담하여야 하우?』
 『그럼요, 그 여러 사람의 치행을 대감이 다 당할 수 있겠어요? 기일이 촉박한데 무엇으로 당하겠소. 큰일났군요.』남자는 내심,
 <설마 그 치행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좋은 피할 구실이 생기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은즉 처는,
 『당신은 아무 걱정 마오, 친정집이 비장으로 수년 있었으니 거기 가서 의복을 얻어오리라.』
 남자는 더 얘기하기가 싫었다. 며칠 후 처가 또 물었다.
 『사또께서 어느날 부임하시우?』
 『아직 택일하지 않았소.』
 그로부터 남자는 밥이 제대로 목에 넘어가질 않고 잠도 제대로 이루질 못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면할 수 있을까 밤낮 생각하였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수년 동안 드나들던 약국집에도 나가지 않고 김판서 집을 수탐하여 알고는 매일같이 김판서 집 근처에서 방황하면서 김판서의 동향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며칠 후 처는 또 물었다.
 『부임할 택일이 되었우?』
 『모레 떠난다우.』
 남자는 퉁명하게 내어 뱉었다. 그러나 처는 일어서더니 시렁 위에서 상자를 하나 내려놓고 그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 있는 보로 쌓인 것을 내어 보를 풀었다. 거기에는 비장으로써 필요한 일체의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남자는 감사가 출발하는 날 일찍 일어나 비장옷을 차려 입고 대감댁으로 총총히 달려갔다. 가본즉 아직 날도 미처 새지 않았는데 문객이며 사령들 그외의 배속역졸들이 흥성대고 있었고 말도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중의 역졸 하나가 말을 몰고 앞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이 말은 성질이 순하오니 나으리가 타옵소서.』
 남자는 그 말을 받아 타고 앞서가기 시작하였다. 흥재원에 이르러 쉬고 있으니까 감사 일행이 도착하였으므로 다시 출발하여 앞서가면서 말하기를,
 『나는 전도비장(前導裨將)이다.』
하였다. 고양(高揚)에 이르니 해가 졌다. 그리고 감사일행도 밀어닥쳐 부득이 함께 자게 되었다. 숙소에 불을 밝히고 여덟 비장이 감사에게 입시하니 그때 남자도 섞여 있었으므로 감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 이상히 여기면서 다른 비장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여러 비장들도 서로 돌아보면서,
 『모르옵니다.』
하였다. 감사는 묵묵히 얼굴을 붉히고 앉아 있는 그 남자를 보고 다시 물었다.
 『그대는 어느 대감의 청촉으로 왔는가?』
 남자는 머뭇머뭇하더니,
 『소인은 청촉비장이 아니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인고?』
 남자는 무릎을 꿇며 떠듬떠듬 말하였다.
 『소인은 명색 자원비장이옵니다.』
 감사는 아무 말없이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더니 이윽고 다시 물었다.
 『자원비장이라, 그럼 바라는 바는 무엇인고?』
 『사또를 따라갈 뿐이오. 별다른 욕망은 없나이다.』
감사는,
 <그가 스스로 따라 왔고, 나에게 아무 해도 없는 바이니 그대로 두어보자.>
 생각하고 그 남자에게 일렀다.
 『그대의 정성이 갸륵하니 내 좌우에 따라 오도록 하라.』
 그 남자는 하늘에라도 오를 듯이 좋아하면서 물러나왔다. 이로부터 모두가 그 남자를 부르기를 <자원비장>이라 하였다.
 평양감영에 이르러 아침 저녁으로 비장들이 감사에게 문안할 때도 역시 한데 끼어 들어왔으나, 감사는 별로 물을 것이 없으므로 갑자기 싫어졌다. 하루는 자원비장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는 본시 자원비장으로서 아무 일도 맡아 보는 것이 없고, 소임도 없으니, 어찌 괴로움을 참아가면서 문안드리러 올 것이 있는가? 지금 대동감관(大同監官)이 비어 있고 매년 먹는 바가 거의 五○금(金)에 이르므로 특히 차정하니, 이후부터 그대를 부르기 전에는 들어오지 않아도 좋으리라.』
 자원비장이 그 명을 받들고 나온 후로 동원(東園) 뒤에 있는 적은 방에 들어박혀 있으면서 언감생심 출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감사의 임기가 다 끝나가서 서너 달밖에 남지 않았을 즈음 이방(吏房)을 시켜 하기(下記-금전출납부)를 가져오게 하여 본즉, 가하(加下-예산초과)가 三만금인데 환하(還下-국고에서 도로 내어주는 것)없으므로 심중으로 몹시 고민하였으나,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하루는 한가히 앉아 이궁리 저궁리 하다가 갑자기 자원비장이 생각났다.
 <그때 쫓아 버리고 三년토록 한 본도 부른 일이 없고 또 아중(衙中)의 상하가 모두 업신여긴 터라 곤궁하였을 것은 당연하리라. 이러한 적악(積惡)의 소치로 그렇게 되었은즉 짊어진 가하가 비록 三, 四만이라 할지라도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비로소 자원비장을 불렀다. 자원비장이 명을 받고 들어온즉, 감사는 위로하였다.
 『한번 보낸 후 三년이나 되도록 공무에 사로잡혀 한번도 불러보지 못하였구나. 그대의 소득이 불과 五○금인데 그대의 고생은 말할 수 없을 것인즉, 나의 허물이 적지 않구나. 그대는 그 사정 잘 짐작하고 용서하라.』
 비장은 두 손을 모아 잡고,
 『황송하옵니다.』
 이어,
 『뵈온즉 사또의 얼굴빛이 초췌하시니, 무슨 걱정이라도 있사옵니까?』
 감사는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하였다.
 『가히 三만냥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밤낮 이렇게 고민하는 중이로세.』
 『그러하오면 어찌 비장들과 상의하지 아니하옵니까?』
 『비장들이 각기 자기 일에 바쁘니 어느 여가에 감사의 가하일을 돌보겠는가?』
 『사또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비장의 소임은 사또를 도와 마땅히 꾀하여야 하므로 옛말에도 잊지 않사옵니까? 그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죽는다고, 그렇지 않을지면 허수아비 비장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옵니까? 소인에게 한 꾀가 있어 사또의 걱정을 나눌까 하나이다.』
 감사는 대단히 기뻐하면서 곧 물었다.
 『어떤 꾀인고?』
 『사또께서 만일 칙고전(勅庫錢-국고금) 三만 냥을 주시오면 좋은 꾀가 있을까 하나이다.』
 감사는 그 말을 따라 출급(出給)하였으나 마음속으로,
 <자원비장이 본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니 중한 칙고를 헐어 주었다가 만약 뜻밖의 불칙한 일이 생기면 그 어찌 화상첨유(火上添油)가 되고 말지 않겠는가?>
 생각하였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자원비장은 전주(全州) 어음을 하여 가지고 여러 비장과 이별한 후 담양(潭陽)을 가시 대를 샀다. 그리고는 배에 싣고 평양으로 오니 그 동안이 거의 한 달이나 걸렸다. 감사는 눈이 빠지도록 오늘이나 내일이나 기다리니 하루는 자원비장이 들어와 감사에 뵈었다. 감사는 반가와 못 견디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그리 늦었는가? 내 간장이 다 끊어져 버릴 뻔하였구나.』
 『이제 사또께서는 아무 걱정 마옵소서. 그리고 내일은 특히 분부를 내리시어 연광정(연光亭)에 잔치를 베푸시고 각 읍 수령을 부르시어 이러이러 하시면 꾀는 그 속에 있나이다.』
 사또는 대단히 기뻐하고 다음날 곧 각 읍 수령을 연광정에 청하고 잔치를 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고 취흥이 도도하여졌을 때 감사는 갑자기 말하였다.
 『평양은 본시 가아면 고을이요 또한 올해는 풍년이 들었으니 민간에 영을 내려 집집마다 죽룡(竹龍)에 불을 켜고 태평성대를 축하하되, 그대들은 본읍에서 반령한 후 그에 따라 각영(各營)에서는 본보기를 삼아라.』
 여러 수령들은 그 명을 받들고 각기 돌아갔다. 영이 한번 내리자 성내 성밖 할 것 없이 백성들은 모두가 기뻐하며 칭송하였으나, 평안도는 대나무가 가는 데가 모두 적고 굽어서 등롱감이 되지 않았다. 대를 구하느라고 너도 나도 돌아다녔으나, 뜻같이 구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푸른 대를 실은 배를 본 사람들은 모두 <하늘이 내리신 대다>하고 서로 다투어 대를 사가지고 가는데 값의 대소를 묻지 않고 다만,
 『천행으로 대를 구했다.』
라고들 하므로 어언간에 三만냥 본전에다가 거의 一○만냥이 되었다. 사또는 그런 줄은 모르고 칙고전을 준 후에 돈에 대한 아무 소식이 없으므로 근심 위에 의심이 더 하였다. 하루는 자원비장이 들어오더니 대를 사가지고 온 것과 三배의 이익을 얻은 것 등을 자세히 얘기하고 칙고전과 가하금을 갚은 증서와 七만냥 어음을 내어 놓았다. 감사는 크게 기뻐하면서,
 『그대의 신기(神機) 묘산(妙算)은 옛사람도 미칠 바가 못되는구나.』
하면서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자원비장은 또한 말하였다.
 『남은 돈 七만냥은 본댁으로 보낼까 하나이다.』
한즉 감사는 펄쩍 뛰었다.
 『이 무슨 말인고? 그대의 꾀로 내 빚을 갚았으니, 그 은혜도 갚기 어렵거늘 거기에다 남은 돈이라니 말도 아닐세. 다시 여러 말 말고 자네나 쓰게.』
 자원비장은 재삼 굳이 사양하고 마침내는 똑같이 나누기로 하였다. 이어,
 『소인은 먼저 돈을 가지고 가겠사오며, 남은 일은 서울 가서 말씀드리겠나이다.』
하니, 감사도 승낙하고 자원비장을 먼저 상경케 하였다. 감사가 서울에 돌아와 본즉, 七만냥 돈은 모두 자기집에 와 있고 몇 날 며칠을 두고 자원비장 오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부터 감사는 사람을 만나면 의례히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몇 해 후 감사는 적은 일로 계소(啓疏)를 만나 왕의 노여움을 샀다. 그의 관직이 삭탈되고 문 밖으로 추방되었다.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어찌하지 못하고 문 밖의 안면있는 하인집에 가서 머물렀다. 그런 중에도 감사는 항상 자원비장을 잊지 않고 있더니 하루는 낯선 선비 한 사람이 들어와 인사를 하였다. 대감은 인사를 받으며 이상히 여겨 물었다.
 『안면은 있소마는 댁은 뉘시오?』
 『소인이 곧 자원비장이온데 오래도록 문안드리지 못하와 황송하기 그지없나이다.』
 대감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사람아! 어찌 그리 무정한가? 자네를 보낸 후 그리는 마음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고 밤낮 만나기를 원하였더니 천도가 무심칠 않아 드디어 만나게 되었구나.』
하며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였다.
 『많은 일에 얽매여 몸을 빼내지 못하와 이제와 겨우 틈을 얻게 되었사옵니다.』
 『내가 쫓겨나 여기와 있으매, 아는 사람 하나 없더니 그대가 이제 왔구나.』
 『대감은 여기에 계시지 마시고 소인과 함께 소인의 처소로 가심이 어떠하시오니까?』
 『그대 말이 좋기는 하나 다만 목하에 치행할 돈이 없으니 어찌하는가?』
 『그걸랑 염려마시고 내일 소인이 인마를 주선하여 오겠사오니 청하옵건대 대감께서는 내행과 함께 가사이다.』
 앞일은 알지 못하였으나 자원비장이 하자는 일이라 틀림이 있겠는가. 생각한 대감은 그가 하자는 대로 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비장은 말과 수레를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대감과 그 내행을 태워가지고 길을 떠났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몰라 시종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역시 몰랐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인마가 준비되어 바꾸어 타고 갈 수가 있었다. 며칠을 그와 같이 가다가 한 곳에 이르니, 험한 산이 앞을 가로 막았다. 그곳에 이르러 비장은 타고 온 인마를 모두 보내고,
 『이곳은 말도 없고 수레도 없사온즉 대감께서는 내행과 함께 부득이 걸으셔야 합니다.』
 대감 일행은 비장이 하자는 대로 비장을 따라 산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얼마 아니 가서 차츰 숨은 차고 다리가 아프며 발은 부르터서 자욱마다 죽을 힘을 다하여 천신만고 끝에 산을 너댓 개 넘었다. 이제는 더 가지 못하고 대감은 대감대로 내행은 내행대로 길가에 나가 떨어져 신음하면서 촌보를 옮기지 못하였다.
 다시 얼마를 더 걸어가니 무수한 마차가 와 맞이하였다. 비장은 일행을 수레와 말에 태워가지고 다시 갔다. 한 곳에 이르니, 골은 깊고 산은 높은데 큼직한 마을이 있고 고래등 같은 집들이 즐비하여 모두가 극히 풍성해 보였다.
 대감은 놀라며 비장에게 물었다.
 『종일 와도 사람 하나 못 보겠더니, 저 마을은 어디기에 저렇게 굉장한가?』
 『이제 가서 보시옵소서』
 어느 사이에 그곳에 이르러 본즉, 마을 한가운데 유독히 큼직한 고루거각이 있느데 모습은 서울의 재상의 집들에 손색이 없었다. 그 집옆에도 또한 그런 집이 있었다. 그들 집에 들어가니 우마·노비가 넉넉하고 겉뿐만 아니라 내면도 윤택하였다. 대감은 이상히 여기면서,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비장에게 물었다. 비장은 곧 대감 일행을 그 집으로 모시고 그가 이 마을 개척하였다는 것과 거기 따른 여러 가지의 재미나는 얘기를 하고 이어 이 마을은 안심하고 피난할 만한 곳이니, 이 집은 대감님이 쓰라고 하였다. 대감은 꿈꾸다가 깨어나 사람 모양 놀라며 비장의 손을 잡고,
 『이것은 다 그대가 준 것이니 형제인들 이보다 더 하겠는가? 우리가 오늘부터 의형제를 맺고 지냄이 어떤가?』
 이로부터 비장과는 의형제가 되어 아무 일없이 편안히 지냈다. 어느날 비장이 대감에게,
 『오늘은 날씨가 청명하니, 높은 곳에 올라가 울화를 푸심이 어떠하시오니까?』
대감도 오래도록 아무 하는 일 없이 적적하던 터라 대단히 기뻐하고 함께 뒷산으로 쉬어쉬엄 올라갔다.
 한낮이 겨워서 산정에 올라가니, 사방이 확 트여 전망이 장관이었다. 대감은 정신없이 전망에 사로잡혀 있는데, 비장이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키면서 먼저 말하였다.
 『대감은 저 산을 아시니이까?』
 『모르겠는걸』
 『그러면 그 옆에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리었는데 그것은 보이시오니까』
 『흡사 검은 안개가 끼어 해가 진 것 같구먼』
 『세 산이 높게 솟은 것을 삼각산이옵고, 연기가 자욱한 곳이 서울이옵니다. 지금 왜놈들이 쳐들어 와서 팔도가 크게 어지러운 것 같은데 저것은 병진이옵니다.』
 대감은 그 말을 듣고 놀랐다.
 『그러면 어찌 여기는 무사하단 말인가?』
 『여기는 지명이 삼척이온데 퇴계 선생이 계셨던 곳이옵니다. 당초에 왜놈들이 노략질할 양으로 평의(平義)란 밀정을 몰래 보냈는데 퇴계 선생이 그 놈을 잡아서 죽이려고 하셨더랍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시고 그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한 놈을 죽이더라도 조선의 八년 영화를 면할 수 없어 그런 것이 아님을 알아라.〉그러므로 왜장이 발병에 앞서 부하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이 삼척을 범하면 반드시 예측하지 못할 우환을 당할 것이니, 특히 명심하라〉고 하셨다 하므로, 이곳은 피난할 만한 곳이온데 아무도 모르옵니다.』
 대감은 그의 달견에 더욱 놀랐다. 그리고 임진왜란 八년 동안을 무사히 지내고 평란 후에야 두 집은 서울로 올라와서 벼슬살이를 하였는데 한 집은 백병사(白兵使)의 조상이니 곧 자원비장이고 한 집은 연동(淵洞)이씨 집이라고 한다.

 

 

 

 

忠婢全生(충비전생)

 

 임진왜란때 얘기다. 어느 집에 三대가 같이 살다가 그 난리를 당하니 자손들이나 노비가 늙은 노인을 돌보지도 않고 각자가 제 살 길을 찾아서 뿔뿔이 도망가고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노옹(老翁)이 혼자 있으매 비록 염장과 쌀이 있으나, 손수 밥을 지어먹지 못하니 굶어 죽을 길밖에 별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자손들도 그런 것쯤 뻔히 알면서 그런 짓을 하였으니, 늙은 것은 죽으란 말과 같다.

노옹은 세상 인심을 탓하고 앉아 있으니, 계집종 하나가 돌아왔다. 노옹은 놀라며 반가운 낯으로 맞이하여 물었다.
 『너는 어찌 피난 가지 않고 돌아왔느냐?』
 계집종은 울면서 아뢰었다.
 『소비(小婢)는 주인마님의 덕을 입사옴이 태산 같고 바다 같사온데 비록 도망가서 생을 도모할지라도 어찌 주인마님이 굶어 세상을 떠나심을 참을 수 있사오니까? 그러므로 돌아와서 제가 모시고 같이 죽어 주인마님의 덕을 갚을까 하나이다.』
 노인은 그 말을 듣고 기뻐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야! 기특하고 착하구나! 너는 반드시 한평생 잘 살겠구나. 그리고 얘야, 네 방에 들어가 벼루와 붓을 가져오너라.』
 계집종은 이상히 여기면서 방에 들어가 벼루를 가지고 와서 놓은즉, 노옹은 주머니속에 주사(朱砂)를 내더니 벼루에 갈았다. 그리고 주사를 붓에 묻히더니 종이에다 벌겋게 부(符)를 하나 그리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계집종을 돌아 보면서 일렀다.
 『네 이것을 대문 위에다 갖다 붙이고 오너라.』
 계집종은 영문도 모르고 노옹이 시키는 대로 갖다 붙이고 돌아왔다. 노옹은 계집종을 보면서,
 『네 난리를 구경하고 싶은가?』
 『예 보고 싶습니다.』
 『그럼 저 대문 안에 구경할 것이지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아라.』
 『지금이 어디 난리오니까? 아직 왜병이 아니 온걸요?』
 『응 그래도 보고 싶거던 한번 가보려무나』
 종년은 더욱 의심이 나고 호기심에 끌려 아무 생각없이 대문으로 나가 보았다. 이 어쩐 일인가? 고요하다고 생각한 집 앞에는 무수한 왜병들이 떼를 지어가고 먼지가 자욱히 끼어 있는데 햇볕에 창칼들이 번쩍번쩍 비치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왜병들은 보이지 않는지 그저 그 앞을 지나가고 지나올 뿐 그 집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계집종은 호기심이 더욱 부쩍 동하여서 좀더 가까이 가서 얘기서만 듣던 왜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건지 보고싶었다.

계집종은 부지불식중 대문 밖으로 나왔다. 이 또 웬 일인가? 대문 밖엔 만경창파(萬頃蒼波)가 바람따라 구비쳐 꿈틀거리며, 산더미 같은 파도가 곧 삼킬 듯이 밀려오지 않는가? 계집종은 허겁지겁 고함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노옹은 작지를 끌면서 나와 계집종을 부축하여 끌어들이며 말하였다.
 『대문밖에는 나기지 말라고 했는데 무엇하러 나갔어?』
 계집종은 울면서 말하였다.
 『주인마님이 이런 기술(奇術)을 아시면서 어찌 작은주인나으리와 가족들과 함께 계시지 않나이까?』
 『그것들은 다 횡사할 무리들이니, 마음이 부량하여 제 살 것만 꾀할 뿐 늙은이는 굶어 죽는 것도 생각않으니 어찌 사람의 자식이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내어 버리고 구하지 않는 것이니, 무릇 사람은 마음이 선량하면 반드시 하늘이 도울지니 너는 이후로 나쁜 짓을 하여 스스로 상하지 말라.』
하더라.

 

 

 

     椎腰燃燭(추요연촉)

 

 어느 재상의 집에서 사위를 맞이하는 날에 여러 재상이 모여 오니, 옛날 우리나라 풍속에 아들 많이 낳고 금실이 한없이 좋은 사람으로 붉은 촛불을 밝히게 하는 것이 하나의 예라. 사위가 장차 당도하매, 주인 재상이 좌중에 복이 많은 재상을 가리어 장차 촛불을 밝히려고 하였더니, 한 여종(女婢)이 바삐 나와 제지해 가로되,
 "바야흐로 촛불을 밝히려는 분은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되 때마침 무더운 여름철인데, 한 서생이 얼굴빛이 마르고 누런데 머리에는 누런 개가죽을 쓰고 귀를 가리었으며 몸에는 감색(紺色) 도포를 입고 허리에는 하나의 작은 몽둥이를 차고 안으로부터 절룩거리며 걸어나와 초를 잡고 불을 붙이되, 불을 붙이고 난 뒤에 곧 몸을 돌이켜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재상들이 괴상히 여겨 주인집의 여종을 불러 물어 가로되,   

"아까 촛불을 켠 자는 답해 누구뇨?"
 여종이 나아가 꿇어앉아 답해 가로되,
 "이는 주인집의 맏사위올시다. 그분이 이 댁 맏따님과 더불어 한 방에 사시는 것이 이제 三○여 년에 이르되, 동쪽으론 흥인문을 나가지 않았고, 서쪽으론 사현(沙峴)을 넘지 않았으며, 남으론 한간을 건너지 않았고 북으론 장의문(壯義門)을 못 보고, 길이 다락 아래 방을 지키어 잠시라도 떨어져 본 일이 없으며, 심지어 월경대(月經帶)에 이르기까지도 친히 스스로 매어드리니, 그 금실의 두터움이 이에 지남이 없을 것이온즉, 정경마님 부인의 뜻이 다 이서방님이 촛불을 켜기를 바랐던 것이옵니다."
여러 재상이 웃음을 머금고 서로 돌아다보며 가로되,
 "그 사위의 허리에 찬 조그만 몽둥이는 무엇이뇨?"
하니 여비가 가로되,
 "소저(小姐)의 혼당(  )이 만약 더러워지면 낭군께서 반드시 빨래방망이를 풀어 손수 빨래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하니 여러 재상들이 이 말을 듣고 졸도치 않는 이가 없었다.

   

 

 

 長談娶婦(장담취부)

 

 옛날에 긴 고담을 듣기 좋아하는 자가 있어 집안이 심히 부유한데 외딸이 있어 나이 차매 시집보내게 되었거늘
 "반드시 능히 고담을 오래하고 길게 하는 자로써 사위를 삼겠다."
하매,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 시험하니, 다 얘기가 길지 못하여 툇자라, 어떤 간사하고 잘 속이는 놈이 있어 그 집 영감을 속이고자 하여, 영감 집에 가서 일러 가로되,
 "제가 적이 고담을 잘 합니다. 그 하도 길어서 끝이 없는 이야기이니, 영감께서 한 번 시험삼아 들어 보시겠습니까?"
영감이 가로되,
 "내 본시 이로써 구혼(求婚)하는지라. 그대가 진실로 능하면 내가 어찌 거짓말을 하랴, 한번 얘기해 보라."
객이 가로되,
 "비록 여러 날이 지날지라도 결코 싫어하지 않겠습니까?"
늙은이가 가로되,  
 "길고 길면 더욱 좋고, 자목 그대의 얘기가 길지 못할까 그것만이 염려로다."
객이 재삼 굳게 약속한 다음 해진 옷을 걷으며 말해 가로되,
 옛날에 수많은 되놈들이 말을 타고 쳐올새 백만 정병이 다 능히 이를 적대치 못하는지라. 이에 조정에서 능히 이를 악을 자를 구하니, 한 모성(毛姓) 가진 대신이 의논해 가로되,
 "오늘의 계획은 자성(子姓) 가진 자를 구하여 병정을 삼아야만 능히 이를 막겠습니다."
조정 가운데서 다 가로되,
 "그것은 어쩐 연고냐?"
대신이 가로되,
 "자성이란, 곧 서성(鼠姓)이니 옛날에 황제(皇帝)가 충우를 정벌하매, 여러 마리의 쥐떼가 적진의 활줄을 끊어 적을 멸하여 개선할새, 황제가 그 쥐들의 큰 훈장을 가상하여 상갑(上甲)을 명하고, 고려가 홍건적(紅巾賊)을 칠 때에 평양의 여러 쥐들이 또한 적진의 활줄을 끊어서 적을 섬멸하여 이기고 돌아오게 한고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당을 지어 제사지내며, 그 사당의 이름을 가로되, <상갑사(上甲祠)>라 한즉, 오늘의 제승(制勝)함이 자성이 아니면 어찌할 수 없는지라, 드디어 쥐 한 마리를 가리어 명하여 대장을 삼은 뒤에 이에 격문을 팔도 여러 굴 속에 있는 쥐들에게 알리고, 속히 기약한 날에 일제히 모이라 하니, 기약한 날이 되매 여러 쥐가 함께 모인즉 대장쥐가 단에 올라 명령을 내리어 가로되,
 "너희들 여러 선비는 각각 차례로써 점고하여 단상에서 부르는 물고(勿古)의 소리를 들어라."
하니 뒤에 있는 쥐가 앞에 가는 쥐의 꼬리를 불고 나아가서 여러 쥐가 일제히 응하거늘, 이에 장수쥐가 드디어 물고 물고 하니 물고 물고의 소리가 입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여 날이 다하고 밤이 다하고 밤이 지나도 오직 가로되,
 "물고 물고 물고.........."
라 하고 五.六일에 이르러도 끊이지 아니하니, 늙은이가 이제는 염증이 나서 물어 가로되,
 "이제 몇 마리의 쥐가 남았느뇨?"
답해 가로되,
 "이제 오는 자는 겨우 한 고을의 쥐의 수니, 일도(一道)를 다 하자면 오히려 멀거늘, 하물며 팔도의 허다한 쥐일까 보오리요."
늙은이가 가로되,
 "길도다 길도다. 이는 길도다. 그러나 한낱 말에 지나지 않으니 족히 들을 만하지 못하도다."
객이 가로되,
 " 끝에 가서 진실로 지극히 기발한 말이 있으나 아직 쥐들이 다 오지 못했으니 한갓 물고 물고만 하고 있습니다. 물고 물고......"
하고 자꾸 계속하거늘, 늙은이가 이미 그 긴 얘기임을 허락하여,
 "이제 그만 그치라."
고 하여 또한 약속을 어기기 어려워 드디어 그 딸로써 아내를 삼게 했는데 이따금 그 사위로 하여금 옛날 얘기를 하라고 하면 매양 물고(勿古)로 색책할 뿐이니. 늙은이가 세상을 마칠 때까지 물고의 말을 다하지 못한 것을 말하여, 이에 그 늙은이와 사위를 칭하여 <장담옹(長談翁)과 물고랑(勿古郞)이라 하였다.

 

 

 

 無妹哭訃(무매곡부)

 

 어떤 바보 원(員) 하나가 있었다. 그가 바야흐로 동헌(東軒)에 올랐을 때였다. 마침 형리(刑吏)가 그의 앞에 있었다. 별안간 방자(房子)놈이 형리에게,
 "저의 누이가 세상을 방금 떠났답니다."
하여 말미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원은 자기의 누이의 부고(訃告)인 줄 그릇 알고 한바탕 목을 놓아 크게 울었다. 울음을 끝내고는,
 "그 병은 어떤 증세였으며, 운명은 며칠날 하였단 말인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방자는,
 "이 부고는 영감께 고하는 것이 아니옵고 형리에게 통고하는 것입니다."
하고 변명을 하는 것이었다. 원이 그제야 눈물을 거두고 조용히 이르기를,
 "다시금 생각해본즉, 난 과연 누이가 없구먼."
하는 것이었다. 여러 아전(衙前)들은 손으로 입을 덮고 가만히 웃었다.

 

 

 

  

命奴推齒(명노추치)

 

 선비 최생(崔生)의 아버지가 함흥 통판(通判)으로 부임할 때, 최생이 따라가게 되었다. 그곳 기생 하나를 사랑하여 침혹(沈惑)의 경지에 빠지게 되었다. 급기야 그의 아버지가 갈려 오게 되어 최생 역시 기생과 서로 헤어지게 되었었다. 기생이 최생의 손목을 잡으면서,
 "한 번 하직하면 다시금 만날 기회 없으니 원컨대 도련님의 신변에 가장 중요한 물건 하나를 선사하시어 서로 잊지 않을 징표를 삼는 것이 어떨까요?"
하고는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최생은 곧 이빨 하나를 빼서 주고는 길을 떠났다. 중도에 이르러 길가 나무그늘 밑에서 말을 먹이다가 기생 생각이 나서 바야흐로 눈물을 짓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한 청년이 그 곳에 이르자 눈물을 뿌리며 훌쩍거리는 것이었다. 또 한 청년이 그 뒤를 이어 이르자 역시 눈물을 짓는 것이었다. 최생은 마음속으로 괴이히 여겨서,
 "너희들은 무슨 이유로 우는가?"
하고 물었었다. 한 청년이 이르기를,
 "저는 곧 서울 재상가(宰相家)의 종입니다. 일찍이 함흥 기생을 사랑한 지 오래더니, 그 기생이 통관의 아들에게 꾀임을 받았을 때도 오히려 옛 정을 잊지 못하여 틈이 나는 대로 만났더니, 지금 감사의 아들이 기생을 사랑하여 감금을 하여 내어 보내지를 않아서 희망이 끊어져 할 수 없이 돌아왔으므로 우는 것이랍니다."
하고 또 한 청년은 이르기를,
 "저는 그 기생에게 많은 재물을 먹였으므로 틈이 나면 반드시 서로 통하여 두 정이 도타왔던 것입니다. 이제 통관 집 도령은 이미 서울로 돌아갔으므로 제가 독접하여 멋대로 즐기려 하였던 것이 어찌 감사의 아들이 또 그를 사랑할 줄이야 알았겠습니까? 그는 깊이 영풍에 감금하여 다시금 만나기란 절망적이었으므로 심장이 끊어지는 듯하던 차에 도련님께서 눈물지으시는 것과 저 친구의 울음을 보고는 저절로 슬픈 느낌이 들어서 눈물이 어리는 줄을 깨닫지 못하였답니다."
하는 것이었다. 최생은 그 기생의 이름이 무엇이더냐고 물었을 제, 둘의 대답이 일치하게도 자기와 교제하던 기생이었다. 최생은 아연히 놀라는 표정으로,
 "원통하구료, 그 천물은 관심 둘 것이 못 되는구려."
하고는 곧 종놈에게 명령하여 그 빼어 주었던 이빨을 도로 찾아 오라 하였을 제 기생은,
 "네 상전의 이빨을 어찌 내가 알 수 있어. 네 멋대로 골라 가려무나."
하고 발악을 하는 것이었다. 종이 다가서서 보니 전대 속에 가득히 찬 이빨이 거의 서너 말 가량이나 되는 것이었다. 종은 웃으면서 물러섰었다.

 

 

 

 

  夫妻訟鏡(부처송경)

 

산골에 살고 있는 어떤 여인이 서울 저자에서 파는 청동경(靑銅鏡)이 보름달처럼 둥글다는 말을 듣고는 늘 한 번 지녀 보기를 원하고 있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몇 해를 지났었다. 때 마침 그 남편이 서울 길을 떠나게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보름이었다. 그녀는 거울의 이름을 깜박 잊고 그 남편더러 하는 말이,
 "서울 저자에 저렇게 생긴 물건이 있다 하니 당신이 꼭 사 갖고 돌아와서 내게 선사해 주세요."
하고 달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가 명념(銘念)하고 서울에 이르자 달은 이미 기울어 반만 남게 되었다. 그는 반달을 쳐다보고 그와 같은 물건을 구하다가 마침 참빗이 그와 같으므로 이것이 곧 아내가 희망하는 물건이 아닌가 하고는 곧 빗을 사 갖고 집으로 돌아오자 달은 또 보름이 되었다. 그는 빗을 내어 아내에게 주면서 하는 말이,
 "서울에 달처럼 생긴 물건은 오직 이것밖에 없다오. 내가 비싼 값을 주고 사왔소 그려."
하고 과시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 갖고 온 것이 자기가 구하던 것이 아니므로 화가 나서 달을 가리키면서 남편을 원망했다.
 "이 물건이 어째서 달과 같단 말이요."
이 말을 들은 그는,
 "서울 하늘에 달린 달은 이것과 꼭 같았는데 시골 달은 이와 같지 않으니 참으로 고이한 일이오."
하고는 곧 다시 물건을 구득하려고 보름달이 뜰 무렵에 서울에 이르러 밝은 달을 바라보니 그 둥근 것이 거울과 다름이 없기에 곧 거울을 사 갖고 왔으나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는 것인 줄 알지 못하고 집에 이르러 아내에게 주었다. 그녀가 거울을 열어 보자 그 남편 곁에 어떤 여인 하나가 앉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평소에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긴 줄을 모르고 살아 오던 터이므로 제 얼굴이 비쳐서 남편의 곁에 앉아 있는 것을 모르고 생각하기를,
 "저이가 새 애인을 사 갖고 돌아온 것이 분명해."
하고 크게 노하여 질투심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크게 이상히 여겨,
 "그럼 내가 한 번 보아야지."
하고 곧 거울을 당겨 보자 아내의 곁에 어떤 이상한 사내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역시 평소에 자기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며칠 집을 비운 그 사이에 다른 간부(姦夫)를 들였구나."
하고 크게 노하여 부부가 거울을 갖고 관가에 들어가 서로 부정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여인이,
 "이 양반이 새 여자를 얻어 들였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하자 남편이,
 "계집은 그 사에 간부를 얻었답니다."
하여 서로 분운하는 것이었다. 이 꼴을 본 그 고을 원은,
 "그 거울을 이리 올리렷다."
하여 거울을 책상 위에서 열어 보았다. 그 원 역시 일찍이 자신의 얼굴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 위의나 의관이 모두 자기와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는 생각하기를,
 "아이구 신관(新官)이 도읍한 모양이구나."
하고 방자를 불러,
 "교대관이 벌써 오셨으니 빨리 인을 봉하여라."
하고는 곧 동헌을 물러나왔다.

 

 

 

 

 子見欺哉(자견기재)

 

서평(西平) 한준겸(韓浚謙)이 일찍이 기묘년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에 올라 글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느 어느 날 하의(荷衣) 홍유(洪油)를 만나러 동호 독서당을 찾았다. 하의는 때마침에 잠자리에 들었고 다만 학사 신광필(申光弼)이 홀로 앉아 있기에 그는 인사를 드렸다. 신이,
 "그대는 무었을 하고 있나?"
하고 묻자 그는,
 "소생은 시골서 올라온 무인(武人)으로서 금위(禁衛)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마침 친구를 찾아 이곳을 지나치다가 당돌히 높으신 자리에 침입하온 바 황공하기 짝이 없소이다."
하고 사과를 하니 신은,
 "괜찮네, 여기 않게."
하고 이내,
 "오늘 밤 경치가 심히 아름다우니 풍월을 읊는 것이 아떤가. 그대는 운을 한 번 불러 보게."
하는 것이다. 그는,
 "풍월이 무엇인 줄을 모르는 제가 운이 무엇인 줄을 어찌 안단 말씀이오."
하자 신은,
 "사물을 접촉하는 대로 흥취를 문득 느껴 그 풍경을 묘사하는 것을 풍월이라 하고, 소리가 시로 같은 글자를 불러 글귀 끝에 다는 것을 일러 운을 부른다는 것이야."
하니 한은,
 "일찍부터 학업에 전념치 않고 다만 활쏘기만을 익힌 제가 어떻게 글자를 안단 말씀이오."
하고 거듭 사양을 하였더니 신은,
 "그대가 아는 글자만 불러 보게."
하고 강요하는 것이다. 그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저는 무인으므로 변변치 못하나 일찍이 배운 것으로 운자를 삼겠소이다."
하고는,
 "향각궁(鄕角弓) 또는 흑각궁(黑角弓)의 궁자가 어떨지요?"
하였더니 신은 "좋아."하고는 곧,
     천리 이 강산을
     피리 한 소리에 보내니  
     의심커라 이 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듯이
하여 두 구를 마쳤다. 이윽고 하의가 잠이 깨어 그를 보고,
"그대, 어디서 오는 길인가."
하고 묻자 신은,
 "이 한내금이 운자 부르는 것이 매우 기특하더이다."
하고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의는,
 "그대가 속았네. 이 사람은 나의 처남신방 강원 한준겸이야."
하고 크게 웃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신은 크게 놀라는 한편 그에게 속은 것이 몹시 부끄러워하였다.

 

 

 

 

 

 柳器善納(유기선납)

 

 금재(琴齋) 이 장곤(李長坤)이 연산군 때에 문과 교리로서 연산군의 미움을 입어 체포하려 하매 도망하여 함흥 땅에 들어섰다. 길에서 목이 몹시 말랐었다. 마침 우물가에 물긷는 처녀를 만나 한 표주막 물을 청했다. 그녀는 바가지를 들어 물을 뜬 뒤에 버들잎을 훑어 물에 띄어주는 것이다. 그는 이상히 여겨 그 연유를 물었다. 그녀는,
 "목이 몹시 마를 때 급히 물을 마시면 혹시 탈이 있을까 염려되어 버들잎을 띄워 천천히 마시게 하는 것이옵니다."
하였다. 이 장곤은 놀라는 한편 기특히 여겨서,
 "너는 누구 집의 처녀냐?"
하고 물었다. 그녀는.
 "저는 저 건너 유기장(柳器匠)의 집 딸이옵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 장곤은 곧 그녀를 따라 그 집을 찾아가 그녀에게 장가들어 몸을 의탁하였다. 금재는 애당초 서울에 살던 귀인이니 어찌 버들 그릇을 만드는 일을 알겠는가. 다만 아침 저녁 밥만 먹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혼곤히 잠만 자고 있었다. 그의 장인, 장모는 크게 노하여,
 "우리가 사위를 맞이한 것은 우리 일을 도와 달라는 것인데, 자네는 아침 저녁을 축내는 밥주머니에 지나지 않으니 어쩌면 좋은가."
하고는 그 뒤로부터 아침 저녁밥을 반만 주는 것이다. 그의 아내가 가엾게 여겨 매번 솥 밑에 눌어붙은 눌은밥을 긁어서 가만히 주린 배를 채워 주었다. 이렇게 하여 볓 해를 지냈다. 중종(中宗)이 반정하자 연산군 때에 득죄한 사람을 모두 적면하매 이장곤에겐 옛 벼슬에 복직시키고 팔도에 명령을 내려 그를 찾았다. 이 소문이 낭자하게 들리자 이 장곤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그는 그의 장인에게,
 "금번 관가에 바친 버들그릇을 제가 싣고 가 바치려합니다."
하였더니 장인은,
 "자네 같은 갈수한(渴睡漢)이 동서의 방향도 잘모르면서 관가 출입을 하다니, 내가 직접 바쳐도 언제나 합격되지 못하였는데 그런 천만부당한 말은 하지도 말게."
하고 노했다. 그 아내는,
 "시험삼아 한 번 보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하고 간청을 하자, 장인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이 장곤은 등에 버들그릇을 지고 줄곧 관가 뜨락으로 들어가 목청을 높여,
 "아무 곳에 살고 있는 유기장이 상납차로 와서 기다립니다."
하고 외쳤다. 본관은 애초부터 그와 친분이 두터운 무변(武弁)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는 크게 몰라 섬돌을 내려와 그의 손을 잡고 자리로 올랐다. 본관은 묻기를,
 "공은 어느 곳에 종적을 감추었다가 이런 꼴로 나타나셨는지요. 조정에서 찾은 지 벌써 오래 되었소이다."
하고는 이내 술상과 의관을 갖추어 바치는 것이다. 그는,
 "부덕한 사람이 유기장이 집에 몸을 의탁하여 생명을 연장하였더니, 뜻밖에도 다시 저 하늘의 광명한 햇빛을 바라보게 되었네."
하였다. 본관은 급히 순영에 보고하여 곧 역마를 내어 서울 길을 떠나 보내려 한다. 그는,
 "유기장의 집에 三년 동안의 주객이 되었으니 정조를 돌보지 않을 수 없네. 또 아울러 조강지처가 있으니 이제 가서 하직을 하고 떠나야 하네. 그대는 명일 아침에 나를 찾아 주게."
하고 곧 유기장이의 집으로 돌아와 말하기를,
 "이번 버들그릇은 무사히 상납하였소이다."
하였더니 장인은,
 "이상도 하여. 옛말에 이르기를 <부엉이가 천 년을 늙으면 꿩 한 마리를 잡는다.>하더니 헛된 말이 아니구나. 오늘 저녁밥은 특히 한 숟갈만 더 주어라."]
하는 것이다. 그 이튿날 아침에  이 장곤은 일찍 일어나 뜨락을 깨끗이 쓸었다. 장인은,
 "우리 사위가 어제 그릇을 잘 바치더니 오늘 아침엔 또 뜨락을 소제하는 것을 보아서 오늘은 해가 서편에서 떠오르겠군."
하고 빈정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는 뜨락에 짚자리를 펴 놓았다.
 "무엇하러 자리를 펴는 것인가."
하고 묻자, 그는,
 "오늘에는 관가 행차가 있을 것이오."
하고 대답했더니 장인은,
 "자네가 잠꼬대를 하는 건가. 관가 나리께서 어찌 우리 집에 행차할 리가 있겠는가. 이제 와서 생각하니 어제 버들그릇을 잘 바친 일도 필시 한길에다 버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거짓말을 했는지도 모르겠군."
하고 쓴웃음을 짓는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본부의 아전이 채석을 갖고 헐떡이면서 와서 방 가운데에 깔고 이르기를,]
 "관사님 행차가 방금 당도하오,"
하는 것이다. 유기장이 부부는 창황하여 얼굴빛이 질린 채 울타리 사이에 피해 숨었다. 얼마 아니 되어 전도하는 소리가 문밖에 미치자 본관이 이르러 그에게 인사를 끝낸 뒤에,
 "형수씨는 어디에 있으신지요, 상견례를 청하오."
하자 이 장곤은 그의 아내를 불러내어 절을 하게 하였다. 그녀의 의상은 비록 남루하나 얼굴은 몹시 정숙하고 의젓하여 상천가의 여자의 태도가 보이지 않았다. 본관은 말하기를,
 "이학사가 궁도에 빠졌을 때 형수씨의 힘으로 이 곳에서 지냈으니, 그 장함은 비록 의기충천한 남자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소이다."
하고는 곧 유기장이를 불러 술을 내리고 인사를 차렸다. 이로부터 이웃 고을 수령들이 뜮임없이 와서 보았고, 감사도 막객을 보내어 전갈을 하니, 유기장이의 집 문 밖에 인마가 많이 모여들고 구경꾼들이 에워쌌다. 이 장곤은 본관에게 이르기를,
"내 아내가 비록 천한 존재였으나 내 이미 부부의 몸이 되었으니 버릴 수는 없소, 교자 하나를 준비하여 함께 서울로 가게 하여 주오."
하자 본관은 그의 말대로 해 주었다. 그는 서울에 이르러 어전에 사은할 제, 임금이 그에게 떠돌이 생활하던 시말을 묻는다. 그는 그간 경험한 일을 상세히 아뢰었다. 임금은 두세 차례 감탄하면서,
 "이런 여인은 천첩으로 대우할 수는 없구나."
하고 특히 올려서 후부인을 삼았다.

 

 

 

 

    沈手分酌(침수분작)

 

호남 어느 절에서 무차대수륙재(無遮大水陸齋)를 지낼 때, 남녀가 모여들어 구경꾼들이 무려 수펀 명이나 되었다. 재가 파한 후에 나이 적은 사미승(沙彌僧) 아이가 도장(道場)을 소제하다가 여인들이 모여 않아 놀던 곳에서 우연히 여자의 음모 한 오리를 주어 스스로 이르되,
 "오늘 기이한 노화를 얻었도다."
하며 그 털을 들고 기뻐 뛰거늘 여러 스님들이 그것을 빼앗으려고 함께 모여 법석이로되, 사미승 아이가 굳게 잡고 놓지 않으며,
 "내가 눈이 묵사발이 되고 내 팔이 끊어질지라도 이 물건만은 가히 빼앗길 수 없다,"
하고 뇌까리니 여러 스님들이,
 " 이와 같은 보물은 어느 개인의 사유물일 수는 없고, 마땅히 여럿이 공론하여 결정할 문제니라."
하고 종을 쳐서 산중 여러 스님이 가사장삼을 입고 큰 방에 열좌(列坐)하여 사미아이를 불러,
 "이 물건이 도장 가운데 떨어져 있었으니, 마땅히 사중(寺中)의 공공한 물건이 아니냐. 네가 비록 주웠다 하나 감히 어찌 이를 혼자 차지하리요."
사미가 할 수 없이 그 터럭을 여러 스님 앞에 내어놓은 즉, 여러 스님이 유리 발우(鉢盂)에 닫은 후에 부처님 앞탁자 위에 놓고,
 "이것이 삼보(三寶)를 장(藏)했으니, 길이 후세에 서로 전할 보물이다."
하거늘 스님이,
 "그러한즉 우리들이 맛보지 못할 게 아니냐?"
한즉 혹자는 또한,
 "그러면 마땅히 각각 잘라서 조금씩 나누어 가지는 것이 어떠냐?"
하니 여러 스님이 가로되,
 "두어 치밖에  안되는 그 털을 어찌 여러 스님이 나누어 가지리요?"
그때 한 객승(客僧)이 끝자리에 앉았다가,
 "소승의 얕은 소견으로는 그 털을 밥짖는 큰 솥에 가운데 넣어 쪄서 돌로 눌러서 물을 길어 큰 솥에 채운 후에 여러 스님께서 나누어 마시면 어찌 공공(公空)의 좋은 일이 아니리요. 나와 같은 객승에게도 그 물을 한잔만 나누어 주신다면 행복이 그 위에 없겠소이다.
한즉 여러 스님이,
 "객스님의 말씀이 성실한 말씀이다."
하고 그 말에 찬성했는데 그때 마침 절에 백세 노승이 가슴과 배가 아프기를 여러 해, 바야흐로 추위를 타서 문을 닫고 들어앉았다.
 이 소리를 전해듣고 홀연히 나타나 합장하며 객승에게 차하해 가로되,
 "누사(陋寺)에 오신 객스님이 어찌 그 일을 공론하면, 늙은 병승과 같은 나는 그 터럭의 눈꼽만한 것도 돌아오지 않을 터이니...... 오늘 객스님 말씀에 가히, 그것을 마신 후에는 저녁에 죽은 한이 있더라도 여한은 없겠소이다. 원컨대 객스님은 성불(成佛), 성불(成佛)하소서."하였다. 
 

 

 


    토부사약(土負社約)

 

 예전에 서로 사귀어 친하기 그지없는 갑과 을 두 선비가 서울로 글공부도 함께 왔겠다. 이 때 두 친구는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여,
 "우리가 큰 뜻을 세우고 마땅히 학업에 힘 쓸 바에야 더욱 절차탁마의 공을 더하여 입신양명의 터를 닦을 뿐이여, 지조를 옮겨 권문세도가의 문객질을 아예 하지 말자."
하고 굳게 맹약하였다. 그러나 두 선비는 여러 해 세월이 흘렀음에도 등과치 못하였다. 그 중에 한 선비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이는 들어가고 해는 저무는데 이름도 얻지 못하였으니 밖으로 활동하여 가만히 권문세도가에 부탁하여 실리(實利)를 거둠만 같지 못하다.'
고 하였다. 하루는 새벽에 몰래 권문 세도가에 도착하여 보니, 대문이 처음 열리며 구종별배(驅從別陪)가 늘어선 가운데, 뇌물을 가지고 기다리는 자가 많았다. 드디어 몸을 이끌어 여러 겹의 문을 지나서 멀리 대청 위를 바라본즉 촛불이 적이 흔들리고 주인대감이 장차 관아(官衙)에 나가려도 하는지라. 곧 그 합하(閤下)에 창황히 통명(通名)하니 청지기가 이르되,
 "주인대감께서 아직 기침치 않았으나, 잠시 기다리오."
하며 객실을 가리키거늘, 갑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간즉 친구인 을이 먼저 들어와 있는지라. 두 사람이 서로 쳐다보니 어이없고 놀랍고, 또한 크게 부끄러워 그 집에서 나와 흩어져 가 버렸다 한다. 듣는 자 웃지 않는 이 없더라.

    

 

 

  喜廳裙聲(희청군성)

 

 정송강(鄭松江), 유서애(柳西崖)가 일찍이 나그네를 교외로 보낼새, 때마침 이백사(李白沙), 심일송(沈一松), 이월사(李月沙) 등 세 사람도 자리를 함께 하였다. 술이 얼근해지자 서로 소리에 대한 품격을 논하였는데 먼저 송강이,
 "맑은 밤 밝은 달에 다락 위에서 그름을 가리는 소리가 제일 좋겠지."
하니 심일송이,
 "만산홍엽(滿山紅葉)인데 바람 앞에 원숭이 우는 소리가 제격일 거야.
이에 유서애가,
 "새벽 창가 졸음이 밀리는데 술독에 술 거르는 소리가 으뜸일 거야?"
하매,
 "산간초당(山間草堂)에 재자(才子)가 시 읊는 소리가 아름답겠지."
하고 월사가 말하니,
 "여러분의 소리 칭찬하는 말씀이 다 그럴듯하기는 하나, 그러나 사람으로 하여금 듣기 좋기로는 동방화촉(洞房花燭) 좋은 밤에 가인(佳人)이 치마끈 푸는 소리가 어떠할꼬?"
하고 백사가 웃으면서 말하니 일좌가 모두 크게 웃었다.

 

 

 

   兩男相合(양남상합)

 

 선묘조(宣廟朝) 무신 연간에 상(上)의 옥후(玉候)가 편치 못하여 약방제조(藥房提調) 이하가 다 궁중에서 잘 때에 의관동지(醫官同知) 이 명원(李命源)이 나이 七○에 제조 최상서(崔尙書)의 곁에서 자나, 밤이 되매 이 명원이 직청(直廳)을 자기 집으로 그릇 알고, 또 최상서를 자기 처로 오인하여 상서의 웃배에 다리를 얹거늘, 상서가 하리(下吏)를 불러 쫒으니라. 또 인묘(仁廟) 경진 연간에 의관동지 최득룡(崔得龍) 이 전교(傳敎)로 약방에서 자더니 하번첨지(下番僉知) 이순원(李順源)과 함께 자니, 순원이 득룡을 처로 알고 장차 깔아 누르려거늘, 득룡이 서서히 가로되,
 "양남상합(兩男相合)이 이익이 없다."
하니 순원이 크게 부끄러워 교체를 기다리지 않고 숙직도 하지 않은 채 달아났다더라.

 

 

 

 

  一般意思(일반의사)

 

 현묵자(玄默子) 홍만종(洪萬宗)의 당숙인 영안도위(永安都尉)가 연경(燕京)에 가는 도중 요소(遼蘇)의 사이에 이르렀더니, 군관 네 사람이 함께 한 여염집에 들어가 바깥채에서 묵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집안이 하도 조용하여 사람의 소리라곤 없다가 갑자기 한 소녀가 나와서,
 "남편이 장교(將校)로서 멀리 나가 있으므로 제가 홀로 집을 지키니, 가이 나그네를 재울수 없습니다."
하고 말이 그치자 아내 안으로 들어갔는데, 한 번 북즉 이것은 분명히 천하국색(天下國色)이라. 이날 밤 한 사람이 여럿이 잠든 틈을 타서 가만히 안으로 들어가 쉽사리 여인의 허락 아래 서로 극환(極歡)을 즐겼다. 밤이 깊은지라 귀를 모아 옆의 소리를 들은즉 곧 자기 친구의 코고는 소리라. 이에 한 사람이 몸을 빼어 안으로 들어가니, 분벽사창(粉壁紗窓)이 반쯤 열리어 있어 마음 속에 크게 기꺼워 몰래 걸어나아가서 장차 한 번 간통할까 하는데, 문득 창밖에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매, 곧 몸을 방 옆에 있는 독 사이에 숨기니, 이에 한 사람이 먼저 와서 그 독 사이에 엎드려 있었다. 드디어 숨을 죽여 기다리는데 또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 앉거늘, 얼마 있다가 또 한 사람이 가만히 기어들어 앉거늘, 얼마 있다가 또 가만히 기어들어 자리에 연(聯)하여 앉는지라, 여인이 이에 손뼉을 치면서,
 "웬 늙은 종놈들이 기약치 않고 이렇게 모여왔는고?"
하고 웃으며 말하니, 독 사이에 모여앉은 네 사람이 제각기 뛰어나오면서 바라보니 다 동행들이라. 네 사람이 서로 돌아다보며 웃으며서,
 "옛날에 이른바 시인의사(詩人意思)가 일반(一般)이다."
한 말이 이 경우가 아니냐 하였다.

 

 

 

 

 面取油蜜(면취유밀)

 

 현묵자(玄默子) 홍만종(洪萬宗)의 장인 정상공(鄭相公)이 관서에 안찰사(按察使)로 있을 때 북경 가는 사신이 평양에 왔으므로 장인이 대연을 베풀어 이를 위로할 때, 홍분(紅粉)이 자리에 그득하거늘, 한 기생이 얼굴에 주근깨가 많으니 서장관(書壯官) 이모(李某)가 희롱하여,
 "네 면상에 주근깨가 많으니 기름을 짜면 여러 되가 나오겠구나."
하고 말하니, 그 때 서장관 이모는 마침 얼굴이 몹시 얽은 위이이라 기생이 응구첩대에,
 "서장관 사또께서는 면상에 벌집이 많으시니, 그 꿀을 취할진대 여러 섬 되겠소이다."
하거늘 서장관 이모가 대응할 말이 없었다. 장인이 그 기생의 응구첩대에 감탄하여 많은 상품을 주었다 한다.

 

 

 

 

   櫃擇(궤택)

 

 이떤 촌늙은이가 그의 딸을 애지중지하여 딸을 위하여 사위를 고를새, 주두나무로 궤짝을 만들고 그 궤짝속에 쌀 쉰다섯 말을 저축하고 사람을 불러,
 "이 궤짝은 무슨 나무로 만들었고, 또 쌀이 몇 말인가를 능히 알아맞히면 마땅히 딸을 주리라."
하며 여러 사람에게 널리 물었는데, 그것이 무슨 나무로 만든 궤짝이며, 쌀이 얼마인지를 아무도 맞히는 자가 없었다. 연고로 해서 이럭저럭 세월이 흘러 꽃다운 나이만 먹어 가거늘, 딸이 그 세월이 무심하고 뽑히려고 모여 오는 이 없음을 답답히 여겨, 드디어 어떤 한 어리석은 장삿군에게 몰래 일러 가로되,
 "그 궤짝은 주두나무로 만들고 거기 넣어 둔 쌀이 五五두라. 그대가 만약 정확히 말하면 가히 나의 짝이 되리라."
하고 일렀다. 그 장삿군이 그 말에 의하여 대답하니, 주인 늙은이가 지혜있는 사위를 얻었다 하여, 날을 가려 초례를 지내고 혹 무슨 일에든지 의심나는 일이 생기면 반드시 그 사위에게 물어 보았다. 어떤 사람이 암소를 팔거늘 주인늙은이가 사위를 청하여 그 모양을 보게 하니, 사위가 그 소를 보고 가로되,
 "주두나무 궤요."
늙은이가 가로되,
 "그대는 망녕되도다. 어찌 소를 가리켜 나무라 하느뇨?"
처가 가만히 그 지아비를 꾸짖어 가로되,
 "어찌 그 입술을 들고 이를 세고 <젊다>하고 그 꼬리를 들고 <능히 많이 낳겠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였더니, 이튿날 처의 어미가 병이 나매, 사위를 청하여 병을 보였더니 사위가 상 아래로 나아가 입술을 들고 가로되,
 "이(齒)가 젊구나!"
하였고, 또한 이불을 걷고 그 뒤를 보면서 가로되,
 "능히 많이 낳겠는걸."
하니, 늙은이와 장모가 노하여가로되,
 "나무를 소라 하고 소를 사람이라 하니, 참으로 미친놈이로구나!"
 듣는 자가 모두 크게 웃었다.

 

 

 

 

    墮水赴衙(타수부아)

 

 양천현(陽川縣)에 신(辛)자 성의 한 남자가 살았는데 그 성격이 대단히 허탄했다. 어느 날 양화(楊花)나무를 거니노라니 맑은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물결은 고요하여 비단결 같았다. 신가가 뱃전에 비스듬히 기대고 않아 자못 감탄한 어조로,
 "만약에 황 사숙(黃思淑--본명은 黃愼, 호는 秋浦, 思淑은 그의 字)이 여기에 같이 있었더라면 가히 더불어 시부를 지을 텐데 허참, 이 경치야말로 홀로 보기 아깝구나."
 때마침 추포가 초라한 차림으로 그 배에 탔다가 그 소리를 듣고..........어느 친구가 탔는가............하고 돌아 보았으나 전연 안면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상히 여기고 가까히 가 물어 보았다.
 "댁은 어찌하여 황사숙을 그리 잘 아시오?"
 "아다 뿐이요, 그와는 어릴 때부터 한 책상에서 글을 읽어 친함은 말할 것도 없고 사숙은 시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또한 사륙(四.六 =文章體)도 잘했는데 일찍이 이런 일이 있었소. 위야사명화유거(魏野謝命畵幽居)란 표(表)를 지을 때 한 귀를 얻었으니........취죽창송은 경동서지 방불이라(翠竹蒼松逕東西之彷佛=푸른 대 푸른 솔은 길의 동서쪽이 비슷하다.)하고 오래도록 침묵하였으나. 끝귀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옆에서 보다 못해..........청산 녹수는 옥상하지의희라(靑山綠水屋上下之依 =푸른 산 푸른 물은 집의 아래위가 비슷하다.).......어찌 그 대(對)가 되지 않겠는가? 사숙이 기꺼이 이것을 사용하였는데 이 글귀가 드디어 한 때 너리 애송되었으니, 기실은 내 힘을 빌어 만든 것이요."
 기가 막히는 사나이다. 추포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웃고 그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았다. 그럭저럭 배가 뭍에 닿았다. 배에서 내리며 신가는 추포를 잡고,
 "같은 배를 타고 반 나절이나 얘기하고 건넜으니, 어찌 우연한 일이라 하리오? 우리 통성명하나 합시다. 나는 양천 사는 신아모요. 댁은 뉘시오?"
 "나는 황신이오."
  신가는 부끄럽고 놀라와 물에 빠지는 줄도 몰랐는데 이 소문을 들은 사람은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深山忘釋(심산망석)

 

 윤생(尹生)이란 자가 관서에 객유(客遊)하더니, 한 촌집에서 묵을새, 비에 막혀 돌아오지 못하였다. 안주인이 비록 늙었으나 말씨와 모양과 행동거지가 촌노파같지 않았던 바 하루는 안주인이 웃으며 가로되,
 "행차가 반드시 심심하실 터인데, 내가 옛날 얘기나 해드려서, 한번 웃으시는 게 어떠하오십니까? "
 "그것 참 좋습니다. "
 하고 윤생이 답하였다.
 이때 주인 늙은이(남편)가 즐기지 않으면서 하는 말이,
 "불길한 말을 이제 또 말하려고 하느뇨? "
 "당신과 내가 함께 늙은지라 그 말을 해서 무엇이 해로우리오? "
 하며 노파가 이어서,
 "내가 본시 초산기생(楚山妓生)으로 나이 열 여섯에 초산 사또에게 홀리어, 그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 그의 방에서만 함께 지내더니, 사또가 의외에 갈려가게 되어, 이별에 임하여 이에 소용의 가장집물을 전부 나에게 주며, 또한 후하게 먹을 것까지 준 후에 나에게 가로되 '내가 돌아간 후에 너도 곧 뒤따라 올라와서 함께 백 년을 지내는 것이 옳으리라' 해서 내가 울면서 허락한지라. 사또가 간 후에 정분을 억제치 못하여 그가 준 것으로 패물로 바꾸어 가지고 동자 한 놈만 데리고 홀홀히 떠나갈새, 겨우 수일간의 길을 가다가, 때마침 추운 겨울이라 대설(大雪)이 나부끼며 가던 길을 잃어버려, 동자로 하여금 말을 버리고 길을 찾게 하였더니, 그릇하여 깊은 눈 구덩이에 빠져 그 가운데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은지라, 중도에 머뭇거리게 되매, 추위는 심하고 다리는 아픈 위에 날 또한 어두워지던 터에, 멀리 깜빡거리는 등불이 숲 사이에 명멸하는 것을 보고, 사람의 집이 있음을 알고 간신히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본즉, 그것은 하나의 부처님 암자인데, 고요하여 사람 하나 없고 탁자 위에 다만 흰 부처님 한 분이 계실 뿐이라, 속으로 생각하기를 방 아랫목이 이미 따뜻하고 등불이 또한 밝은데, 중도 없으니 괴상하고도 괴상하도다. 그러나 일이 이 지경으로 궁한 처지에 어디 달리 갈 데가 없고 해서, 몸소 말 안장을 풀어 죽을 쑤어 말에게 먹이고, 홀로 방 가운데 누워 천천히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얼마 후에 몸이 녹으면서 번열증이 심한지라, 사람은 없고 해서, 치마 저고리를 다 벗고 속옷만 입고 몸둥아리를 드러내 놓고 누어 있었더니, 뜻 아니한 중에 스님 한 분이 달려들어 강간하니, 비록 항거하려고 하였으나 밤중 깊은 산에 그 누가 와서 구해 주리오. 원래 이 스님은 이미 십여 세때부터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벽곡( 穀 : 생식)하고 홀로 암자 가운데 사니, 나이 바야흐로 이십 팔 세라, 위에 이른 바 탁자 위의 백의 부처님이 곧 그라. 계행이 비록 높으나 정욕이 움직인 바 되니, 어찌 가히 억제하리오. 이튿날 창문을 열고 바라보니 적설이 처마에 쌓여 돌아가고자 하나 어찌 할 수가 없어, 그럭저럭 겨울을 나니, 두 사람의 정분이 함께 흡족하거늘, 스님이 가로되,
 '나도 그대를 구하지 않았고 그대도 나를 찾지 않았건만 어찌 길로 쌓인 눈이 나로 하여금 그대를 만나게 하여 줄줄 알았으랴. 나의 계행은 그대로 인하여 훼손되고, 그대의 절개는 나로 인연하여 이지러졌으니, 일이 이에 이르러 묘하게 합치게 되었도다. 이는 하늘이 그대와 나의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준 바이라 할 것이니, 어찌 반드시 옛 낭군을 찾아가서 첩이 될까 보냐. 나와 더불어 해로하여 함께 안락함을 누리는 것이 어떠하냐? ' 하거늘 내 또한 생각해 보매 말과 실지가 이치 있는 듯하여, 그 스님을 따라 여기에 와서 산즉, 아들과 딸을 낳아 집안이 또한 넉넉하니, 이 어찌 하늘의 이치가 아니리오. 저 늙은이가 바로 당일의 산승입니다."
 하니 늙은이 또한 웃으면서 말이 없었다.

 

 

 

 

良妻無信(양처무신)

 

 옛날에 봄놀이 하던 여러 선비가 산사(山寺)에 모여 우연히 여편네 자랑으로 갑과 을을 정하지 못하더니, 곁에 한 늙은 스님이 고요히 듣고 있다가 한참만에 길이 탄식하며 가로되,
 "여러분 높으신 선비들은 쓸데없는 우스갯소리를 거두시고 모름지기 내 말씀을 들어 보시오. 소승은 곧 옛날의 한다 하는 한량이었지요. 처가 죽은 후 재취하였더니 재취가 어찌 고운지 참아 잠시도 떨어지지 못하고 다정히 지내다가, 마침 되놈들이 쳐들어와 크게 분탕질이라, 사랑하는 아내한테 빠져 능히 창을 잡아 앞으로 달리지 못하고, 처를 이끌고 도망치다가 말탄 되놈들에게 붙잡힌 바 되었는데, 되놈이 처의 아름다움을 보고 소승을 장막 아래에 붙잡아 매고, 처를 이끌고 들어가서 함께 자거늘, 깃대와 북이 자주 접하매 운우(雲雨)가 여러 번 무르익어 남자도 좋아하고 계집은 기뻐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어 더럽더니, 밤중에 계집이 되놈장수에게 '본부가 곁에 있어서 마침내 편안한 마음으로 하기 곤란하니, 죽여 없애는 것이 어떠하오? '하매, 그 두목이 '네 말이 옳도다. 좋아! 좋아! '하니 소승이 이에 그 음란한데 분통이 터진 데다가 또한 이 말에 놀래어, 있는 기운을 힘껏 써서 팔을 펴 매어 묶은 끈이 다행이 끊어지는지라, 청룡도(靑龍刀)를 훔쳐 바로 장막 안에 뛰어 들어, 남녀를 함께 벤 후에, 몸을 빼쳐 도망해 돌아가서, 머리를 깎고 치의(緇衣)를 입어 구차히 생명을 보전하니, 이로 말미암아 말하건대 여러분 높으신 선비들의 여편네 자랑을 어찌 가히 다 믿을 수가 있으리오. "
 하니 여러 선비들이 무연히 말이 없었다.

 

 

 

 

狹氣有幸(협기유행)

 

 영남에 김씨 성 가진 자가 있어 힘이 무섭게 세고 또한 활 쏘기를 썩 잘하여, 무과(武科)에 응시하기 위하여 상경하다가 길을 잃어, 산으로 들어가니, 가을 날씨가 장차 저물려는데, 다시 수백보를 나아간즉 가운데 큰 집이 있고, 곁에 조그만 오막살이들이 있는데, 그 광경이 어쩐지 쓸쓸하기 그지 없었다. 고요하여 인적이 끊인 품이 귀신이라도 나올 듯 하였다. 다시 문을 두드려 보았으나 응해 주는 자가 없더니, 중문(重門)에 이르른즉 한 절세미인이 나타났는데 나이 열 칠팔 세 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 머리를 얹지 않은 것으로 보아 처녀임이 분명한데, 여인이 슬픈 듯도 하고 기꺼운 듯한 표정으로 물어 가로되,
 "손님께서는 어디서 오시는지요? "
 "청컨대 바깥채에서라도 하룻밤 자고 가기를 원합니다. "
 하고 김씨가 말하니, 처녀가 김씨를 객석에 맞이하여 몸소 저녁상을 잘 차려다 주는데, 비록 고기 반찬은 없으나 소채의 종류가 아주 깨끗하기 이를 데 없었다. 김씨는 굶주린 끝에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우고, 처녀가 혹시 귀신인가 사람인가 의심하여 물어보니, 처녀가 김씨를 대하여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제가 본시 양반의 자손으로 집안이 크게 부유하여 좌우 촌란이 다 우리집 노비권속이었고, 동서 전원이 다 우리집 땅이었지요. 한 집안 속에 오손도손 스스로 평안한 백성이 되어 살고 있었는데, 불의에 포악한 놈이 하나 나타났는데, 그 기운을 말하면 오확이라 할까요. 그 흉악함을 말할진댄 현대판 도적이 분명해요. 저의 자색을 탐내어 위로 부모로부터 아래로는 청지기 기타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없애고, 저를 겁간코자 하니, 한번 죽음이 쾌한 줄을 알지 못함이 아니나 제가 만약 죽으면 깊은 원수를 그 누가 갚아 주며, 지극한 원한을 어찌 풀 수 있으리오. 마음 아픔을 참고 원한을 품으며 핍박에 이기지 못하여 부득이 좋은 말로 도적에게 타일러 가로되,
 '일이 이에 이르매 죽어,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자못 좋은 깨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다 먹은 후에 허신(許身)하여도 오히려 늦지 않으리니, 내 말을 좇지 않으면 그때엔 나도 죽음이 있을 뿐이로다'
 하니 흉적이 나를 자기 손안의 물건이라 인정하고 또한 잘못 건드렸다가 죽으면 아깝다 하여, 짐짓 나를 범하지 않는 고로, 구차히 모진 목숨을 이어 왔습니다. 생각컨대 조놈을 죽여야만 하겠는데, 우리 집이 궁벽한 곳에 있는지라, 이미 오는 이도 없고 비록 친척이 있다 하나 이제는 정말로 욕을 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스스로 한번 죽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슬픈 심정으로 있었더니, 이제 귀객이 문득 이르시니, 능히 저를 위하여 이 지극한 원한을 말씀드리옵니다. 저로 말미암아 그 앙화가 골육지친에 미치니, 생각해 보면 창자가 끊어지는 것같고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습니다. "
 하고 말을 마치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거늘, 김씨가 비록 흉적의 용기를 꺼리기는 하였으나, 한번 듣고 분통이 터지며 담기가 뭉클하여 이에 가로되,
 "내 만일 이 도적놈을 죽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로다. 모름지기 내 하는 양을 보라. "
 여인이 기뻐 가로되,
 "이 도적은 기운만으론 이기기 어려우니, 반드시 계책을 써야 할 것이옵니다. "
 하면서,
 "동네 밖에 숲이 있고 숲 사이에 못이 있으니, 못의 깊이가 천척이나 되고 길이 못가에 둘러 있는데, 일찌기 들으니, 이 도적놈이 못을 헤엄쳐서 지름길로 온다 하오니, 숲 사이에 숨어 계시다가 가히 온 힘을 기울여 못을 헤엄쳐 그 도적의 용기가 감해지기를 기다리시어 기회를 타서 행동하시면 거의 성공하오리라. 그렇치 않으실까요? "
 하니, 김씨가 그 계책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 후에 새벽에 그 곳에 가서 활을 벌려 화살을 끼고 엎드려 기다리는데, 아침나절이나 되어 도적이 묻되,  "어제 온 자는 누군데 어디서 왔느냐? "
 여인이 가로되,
 "그는 나의 외척이니, 오늘 새벽에 이미 떠나 갔소이다. "
 듣기를 마치지 못하고 냇가에 이르러 동서를 돌아보고 옷을 벗고 헤엄쳐 감에 그것은 마치 날오리가 층랑(層浪)을 희롱하는 것과 같았다. 김씨가 가만히 등뒤로 좇아 날카로운 한 화살을 쏘니, 도적이 울부짖으며 크게 소리치고 몸을 돌이켜 오거늘, 김씨가 정신을 가다듬어 또 쏘고 거듭 쏘아, 화살이 목덜미를 꿰뚫고 사지가 늘어지며 물 위에 뜨거늘, 김씨가 그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화살을 도로 빼가지고 돌아오니, 여인이 비단 수건을 들보에다 걸고 성패여하로 생사를 결단코자 하다가, 도적을 죽이고 돌아옴을 보고, 바쁘게 집에서 내려와 김시를 보고 칭사함이 천만번이라, 칭사에 가로되,
 "지극한 원한을 풀어 주시고, 원통을 없애 주시니, 태산같은 은혜와 바다 같은 은덕을 무엇으로써 보답하리이까. 저를 난 자는 부모요, 저를 살린 자는 그대이시니, 이 몸의 터럭과 머리카락은 그대의 주신바라. 오직 그대는 이몸을 마음대로 하소서. "
 "나의 이번 일을 가린 것이 자못 일단 의기를 위하여 하였을 뿐이고, 저 도적이 화살 앞에 꺼꾸러진 것은 나의 용맹이 아니라, 다만 그의 죄악이 하늘에 차서 나의 손을 빌렸을 뿐이니, 나에게 어찌 믿으리오. 오직 바라건대 소저는 스스로 행복을 구하여 잘 지내시오. 잘 지내시오. "
 하고 김씨가 말을 마치자 성명을 고하지 않고 서울로 돌아와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본시 시골의 세력 없는 백성이라 정향을 왕래하여 벼슬을 하지 못하기를 이미 십여 년이었다. 그때 여인은 도적을 죽인후 비로소 친척을 찾아 그 배를 갈라 그 간을 씹고, 날을 가리어 친장(親葬)을 지낸 후에 가사를 정리하고, 서울의 어느 재상의 계실(繼室)이 되었더니, 심히 부덕이 있어 금슬이 좋으나, 일찌기 사람을 보고 웃는 낯을 해본 일이 없었다.
 재상이 괴상히 여겨 물어 보거늘 부인이 울면서 그 일을 말하기를,
 "내가 살아 생전에 이 은혜를 갚지 못하면 죽는다 하더라도 눈을 감기 어려우니, 어찌 웃으리까. "
 재상이 마음에 측은히 여겨 반드시 그 사람을 찾아 그 은혜를 갚고자 하였더니, 대사마(大司馬)가 되어 매양 시골 사람을 만나면 각각 자기의 경력한 바를 말하게 하고, 그 사람을 찾고자 하였더니, 부인이 병풍 뒤에 앉아 가만히 그 말을 엿들었는데, 하루는 김시가 통자(通刺) 배알한 후에 그 지난 일을 말하니, 김씨의 모습과 이목은 이미 부인의 심간에 새겨 둔지라, 비록 백년이 지났다 하나, 어찌 잊을 이치가 있으리오. 한번 그 말을 들으매, 곧 외당(外堂)에 나와 그의 손을 잡으며 아저씨로 불러 눈물이 비오듯하며, 감히 더 말을 하지 못하는지라, 재상이 김씨를 위하여 집 한 채를 사서 이웃에 살게 하며, 친척으로 대우하니, 김씨 또한 이로 인하여 마침내 현관(顯官)에 이르렀다.

 

 

 

 

家兒寵妾(가아총첩)

 

 어떤 재상이 항상 말하되,
 "내가 영남 도백으로 있을 때에 집 아이가 한 기생첩을 사랑하였는데, 내가 체차되어 돌아오매, 함께 데리고 왔더니, 수년이 지난 뒤에 스스로 꾸짖음을 얻은 줄 알고 창기를 두는 자는 이 어찌 사부(士夫)의 행실일가 보냐, 하여 이에 쫓아 보내었더니, 이미 쫓아낸 후에 내가 '그 여인이 떠날 때에 여인이 무어라 말하더냐? ' 물으니, '별로 다른 말이 없삽고 다못 말하되, 이렇듯 수년 동안 건즐(巾櫛)을 받들어 오다가 문득 이러한 이별이 있으니, 유유한 나의 회포를 무엇으로써 형언하리오. ' 하며, 운자를 불러 별장(別章)을 짓겠다기에, 곧 군(君)자를 부른즉, 여인이 가로되 어찌 반드시 군자(君字)만 부르는고 하고 이에 읊어 가로되

 낙동강상초봉군(洙東江上初逢君)터니
 보제원두우별군(普濟院頭又別君)이라
 도화낙지홍무적(桃花落地紅無跡)하니
 연월하시불억군(烟月何時不憶君)가

 낙동강 위에서 님을 만나고
 보제 원두에서 님과 여위니
 복사꽃도 지며는 자취 감춘데
 어느 세월 어느 땐들 내님 잊으랴

 이렇게 읊고 눈물을 흘리며 물러감에 내 그 시를 듣고 그의 결연히 죽을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내어 불러오게 하였더니, 이미 누암강(樓岩江)에 투신 자살한지라, 내 아들이 이로 인하여 병을 얻어 두어 달만에 죽었도다. 내또한 이 일이 있은 후로 때를 만나지 못하고 장차 늙어가니, 부자의 사이에 오히려 이러하거든 하물며 다른이에게 가히 적원(積怨)할 수 있으랴. "
 하더라.

 

 

 

 

老犬靈聞(노견영문)

 

 어떤 나그네가 산협 속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촌가에 투숙하였더니, 다못 한 늙은 여편네가 그의 투숙을 허락하면서 가로되,
 "이웃마을에 푸닥거리가 있어 나를 청하여 와서 보라 하나 집안에 남정이 없는 고로 갈 생각이 있어도 가지 못했더니, 손님이 오셨으니 잠간 저의 집을 보살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
 객이 이를 허락하매, 늙은 할미가 갔는데, 그 집의 늙은개가 곧 웃방에 들어와서 빈 그릇을 이끌어다 놓고 겹쳐디디기 좋도록 한다음, 그 위에 뛰어올라 실겅 위의 떡을 핥아먹거늘, 밤이 깊은 뒤에 할미가 돌아와 손으로 실겅위를 만지며 괴상하다고 하는데, 객이 그 연고를 물었더니 할미가 가로되,
 "어제 내가 시루떡을 쪄서 이 실겅 위에다 얹어 두었소. 결단코 손님이 잡수실 리가 없고 찾아보아도 없으니, 어찌 괴이치 않으리오. "
 하니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 일을 밝혀 말하기 거북하나, 자기가 훔쳐 먹지 않았나 하는 허물을 면키 위하여 이에 그 자초지종의 본 바를 말하니, 할미가 가로되,
 "물건이 오래되면 반드시 신(神)이 붙는다더니, 진실한 지고 그 말씀이어. 이 개가 이미 수십년을 지낸 연고로 이렇게 흉측한 일을 하니, 내일 마땅히 개백정을 불러다가 처치해야겠소. "
 한즉 개가 이 말을 듣고 나그네를 흘겨보며 독을 품는 눈치였다. 객이 마음에 몹시 두려워 다른 곳에 은신하여 옷과 이불을 그대로 깔아놓고 동정을 살피니, 얼마 후에 개가 방 가운데 들어와 사납게 옷을 깨물며 몸을 흔들어 독을 풍기며 오래 있다가 나가는지라, 객이 모골이 송연하여 주인 할미를 깨워 일으킨 후에 개를 찾게 하였더니, 개는 이미 기진하여 죽어 넘어진지라, 객이 만나는 사람마다 매양 그 이야기를 일러 가로되,
 "짐승도 오히려 그 허물을 듣기 싫어하거든, 하물며 남이 모자라는 것을 털어 얘기할 수 있을까 보냐. "하였다.

 

 

 

 

勸善懲惡(권선징악)

 

 허 서방이란 자가 탐심이 많고 또한 부지런하여, 전혀 옳지 않은 일만 영위하여 많은 재산을 벌었겠다. 때마침 밭갈이할 무렵이라 일군들을 지휘하여 쓰레기와 거름 등속을 소에 실어 내더니, 때마침 늙은 중이 떨어진 옷과 해진 짚신으로 문전에 이르러 밥을 빌거늘 허 서방이 크게 노하여 가로되,
 "내가 평생에 미워하는 자가 중과 여승이라. 밭갈지 아니하며, 길쌈하지 않으며, 놀고 입고 놀고 먹으니, 그것은 백성의 좀이라, 네가 어찌 감히 나의 집에서 밥을 구하느뇨? "
 하고 쇠붙이와 호미 등속으로 발우(鉢盂) 안에다 똥을 하나 그득 담아 두매, 노승이 묵묵히 받아가지고 돌아갔겠다. 그 이웃에 양서방이란 자가 있어 집안은 비록 가난하나, 성품이 본시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여 이를 보고 불상히 생각하고 가로되,
 "성인(聖人)은 한 줌 밤과 한 그릇 죽을 얻은즉 살고 얻지 못하면 죽을지라도, 그를 불러 주면 행도(行道)하는 이는 받지 아니하고, 그를 차면서 주면 걸인도 편안치 않는다 하니, 이것은 또한 한줌의 밥과 한 그릇의 죽에 비할 바가 아니니, 그대는 어찌 받으리오? "하니까,
 "오직 존자께서 천한 자에게 주심에 오히려 감히 사필 말씀이 없거든, 하물며 산승이 감히 높으신 어른께서 주심을 사양하리까? "
 양서방이 이에 발우를 달라 해서 깨끗이 씻고 그 곳에 공양을 담아 드리니, 스님 손을 합장하며, 사례해 가로되,
 "시주의 후한 뜻을 무엇으로써 갚으리오. 나로 하여금 고요한 방에 있게 하여, 나에게 짚을 주시고 인적을 통하지 않게 하시면, 마땅히 당신께 은혜갚을 길이 있겠읍니다. "
 해서, 양서방이 그 말대로 하여 베푸니, 잠시 지난 뒤에 노승이 양서방을 부르거늘 들어가 본즉, 돈이 방안에 그득한지라, 크게 놀라고 괴상히 여겨 비로소 그가 신승(神僧)임을 알고 발 벗은 채로 뜰에 내려 묵묵히 치사하였는데, 노승이 미소를 지으며 가로되,
 "그대에게 오래 쌓은 선심이 있으니, 보은하는 이치가 마땅히 이와 같도다. 어찌 치사하리오. "
 하고 이에 다시 말하되,
 "명년 이날에 내 마땅히 다시 와서 그대가 반가이 만나리라. "
 하고 말을 마친 다음 지팡이를 휘두르며 사라져 갔다. 양서방이 이로부터 가도(家道)가 점점 풍성해져 이웃 허서방을 부러워하지 않을 지경이어늘, 허 서방이 괴이히 여겨 와서 그 치부의 술책을 묻는데, 양 서방이 그 경위를 말하니, 허서방이 가로되,
 "스님이 만약 다시 오시면 모름지기 나에게 알리라. "
 "그렇게 합시다. "
 하고 양 서방이 답했다.
 그후 기약된 날에 이르러 노승이 과연 도착하니, 허서방이 친히 맞이하여 집에 돌아가 성찬으로 대우하여, 엎드려 절하며 간청하여 가로되,
 "듣자온즉 노존사께서 모래(沙)를 단련하여 성금케 하는 신술이 있다하니, 엎드려 원컨데 나를 위하여 시험해 주소서. "
 노승이 허락한즉 허 서방이 심히 기뻐하여, 집을 정하고 사람을 물리쳐 양 서방이 한 것과 같이 하였더니, 이레를 겨우 지난 후에 문꼬리를 열고 본즉, 스님은 간 곳이 없는지라, 허 서방이 가서 보니 허서방과 똑같이 생긴 허 서방이 뛰어나와 허 서방을 발길로 차면서 가로되,
 "내 본시 이 집주인이라 네가 어떤 놈이냐? "
 하거늘, 허 서방의 처자가 놀라 자세히 본즉, 면목과 해동거지와 언어, 풍속이 조금도 진짜 허 서방과 다름없는지라, 진짜 허서방과 가짜 허서방이 서로 '이집 주인이 자기'라고 하여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데, 처자 권속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신(神)에게 푸닥거리를 해도 듣지 않 , 관가에 송사를 해도 관가에서 이를 가리지 못하는지라. 진짜 가짜의 두 허서방이 싸우기를 길이 일삼으니, 그 동안 쓴 돈과 낭비가 물과 불같아서 가산이 탕진되고 남음이 없는지라. 하루는 노승이 다시 와서 허서방에게 말해 가로되,
 "패악하여 들어오고 패악하여 나감은 이치의 상사라, 그대의 일생이 어질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옳지 못함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니, 이미 그 많은 재산을 모으고도 오히려 족히 생각치 않고 더욱 그 패도를 행하니, 재앙이 어찌 발생치 않으랴. "
 얘기를 마치자 이에 지팡이를 들어 한번 가짜 허서방을 미니, 곧 그것은 소먹이 한 묶음으로 변했다. 노승이 섬돌을 내려 두어 걸음 걸어가매, 별안간 그 자취가 없었다.

 

 

 

 

險漢逞憾(험한영감)

 

 서울사람 하나가 성품이 교활하여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몹쓸 놈이라 했다. 그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어느 날 길에서 배(梨)장수를 만났다.
 『여보 몇 개만 먹어 봅시다.』
 하고 청했으나 워낙 인색한 배 장수라 듣지 아니하였다.
 『내 너로 하여금 앙갚음을 할 테니 그리 알아라.』
 하고 배 장수보다 한 마장쯤 먼저 가서 길가 논 가운데 남녀 수십명이 모를 심는 것을 보고는 그 가운데 제일 나이 적고 아름다운 여인을 불러 가로되,
 『아씨가 제일 어여쁘니 오늘 밤 함께 자 보는 것이 어떠냐?』
 하고 희롱 하니 여러 사람이 이 소리를 듣고 크게 노하여,
 『어떤 미친 놈이 와서 희롱하느냐?』
 하고 좆아 오거늘, 서울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급히 언덕을 뛰어넘어 그 아래에 각서 앉아 한 손을 쳐들며 크게 소리치며 가로되,
 『배(梨)를 지고 오는 형님! 빨리 오시오. 빨리 오시오!』
 이 때 배장수가 마침 논밭 근처에 당도하니, 모심던 여러 수십 명이 달려들어 형님이란 소리를 듣고 배 장수의 덜미를 끌며,
 『넌 저놈의 형인 모양인데, 네 아우의 죄는 네가 마땅히 당해야 할 것이다. 』
 하며 주먹과 발길이 우박처럼 쳐왔다. 몸에 성한 곳이 없고 옷은 찢어지고 배는 깨지고 흩어졌다. 배장수가 불의의 봉변을 당하고 애걸하면서 가로되,
 『저 언덕 아래에 있는 놈은 본시 내 동생이 아니오. 아까 길가에서 그 놈이 배를 달라기에 주지 않았더니, 이에 심술을 부려 여러분을 속여 나를 괴롭히니 여러분은 양해하고 나를 살려 달라』
 여럿이 그럴싸 해서 매를 그치니 배장수는 겨우 일어나 배를 수습하여 가니, 서울 사람이 언덕 아래에 앉아 있다가 길에서 배장수의 낭패하여 오는 모습을 보고 가로되,
 『그대가 배 두어 개를 아끼더니 이제 어떤고?』
 배 장수가 분함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말이 없었다. 이 때 또 한 역졸이 흰 말을 타고 지나가거늘 서울 사람이 말을 붙잡고 청하기를,
 『내가 여러 날 길을 걸어 발이 콩멍석이요, 다리가 아파 죽겠으니, 요다음 주막까지 잠깐 말을 빌림이 어떠한 가?』
 『너는 어떤 위인인데 말을 타고자 하느뇨? 나도 또한 다리가 아픈즉 다시는 그 따위 미친 수작 말라』
 『네가 감히 허락치 않으니 내 마땅히 너로 하여금 봉변케 하리라.』
 하고 눈을 부릅뜨고 말하니,
 『시러배아들놈!』
 하고 웃고 가거늘 서울 사람이 그 뒤를 따라 역졸이 주막에 들어간 것을 보고, 그 때 마침 주인 여자가 방 가운데서 바느질하는 것을 보고 창 밖에 서서 가로되
 『낭자(娘子) 낭자여, 내 마땅히 밤 깊은 후에 와서 한 판 하리니, 이 창문을 열고 나를 기다리라. 나로 말하면 아까 여기 흰 말을 타고 와서 건너 주막에 와서 자고자 하던 사람이라.』
 하니,
 여인이 크게 놀라고 노하여 곧 그 말을 남편에게 고하니, 남편이 대로하여 그 아들과 동생들을 거느리고 주막으로 달려들어, 아까 흰 말을 타고 온 사람을 찾으니, 역졸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고 응한 즉, 세 사람이 죄를 꾸짖으며 어지러히 후려치니, 온 몸이 중상이라 주막 주인이 구해내며,
 『이 사람은 저녁에 우리 집에 들어온 후 아직까지 창 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잠만 자고 있었으며 천만 애매하니 이는 반드시 그릇됨이라』
 여러 손님의 말이 또한 그와 같았으므로, 반신 반의하여 간신히 풀어 주니, 이튿날 아침에 서울 사람이 먼저 길을 떠나서몇 리 밖에 가서 길가에 앉았는데, 그 때 역졸이 기운 없이  말을 타고 오거늘 서울 사람이,
 『네가 어제 나에게 말을 빌리지 않더니 지난밤 액땜이 과연 어떠하뇨? 오늘에 또 만약 말을 빌리지 않으면 마땅히 이와 같은 일을 또 한번 당하게 하리라.』
하니 역졸이 크게 두려워 말에서 내려 잘못했음을 빌며, 하루 동안 말을 빌려 주었다.

 

 

 

 

臭惡廢弓(취악폐궁)

 

 옛날에 한 사람의 한량이 봄과 여름이 바뀔 무렵해, 서산중 사단(射壇)에 들어가 활을 쏘다가 그 아래 시냇물에 물을 마시기 위하여 내려갔더니, 한 젊은 여인이 빨래를 하다가 늦은 봄 볕에 피곤하여 소나무 그늘 밑에 누워 잠이 깊게 들었었다. 한량이 그 곁에 앉아서 불러보아도 깨지 아니하고, 어루만져도 알지 못하는지라, 그 옆에 누워서 한 팔로 여자를 베게 하고, 다리를 얹고 허리를 안은 후에 엄지손가락으로 음호(陰戶)가운데 들이밀어, 움직여 흔들어도 여인이 깊은 잠에 취하여 깨지 못하였다. 한량도 또한 곤하게 잠이 들어 한낮이 지나 비로소 깬즉, 엄지손가락이 아직도 음호 가운데 있거늘, 웃으며 일어나 빼어보니, 오래 습기 있는 음호 가운데서 엄지손가락이 불어 커져서 부고(浮高)의 모양과 같고 또 좌우의 손가락과 손가락에 흰죽 같은 것이 널리 퍼졌으며, 그 곳에서 악취가 고약하게 났다. 그는 급히 시냇물에 깨끗이 씻고, 또 씻은 후 다시 사단(射壇)에 돌아와 활을 잡고 화살을 당기는데, 활줄이 코와 볼 사이에 이르러 엄지손가락의 악취가 아직도 다 가시지 않고, 코를 찌르므로 활을 쏘매 화살은 절반도 못가서 떨어졌다. 계속하여 쏘니, 능히 격식대로 쏘지 못하고 매양 코와 볼 사이에 이른즉, 코에 닿아 견디기 어려움에 마음 또한 안정되지 않고 산란하여, 스스로 우스우나, 쏘기를 매양 이와 같이 하여 드디어 궁병(弓病)이란 묘한 병에 걸려 여러 달 동안에 폐공(廢工)이 되었다 한다. 듣고 절도치 않는자 없었다.

 

 

 

 

神卜奇驗(신복기험)

 

 한 선비가 나이 三十에 비로소 아들 하나를 얻으니 六·七세에 이르러 잘 생긴 인물이 출중하여 심히 애지중지 하였더니, 하루는 우연히 귀신처럼 점 잘 치는 소경을 만나서 그 귀여운 아들의 수요(壽夭)를 물으니 소경이,
 『이 아이는 열 다섯 살만 지나면 과연 귀하게 될 인격인데 처를 얻자 얼마 후에 반드시 횡사하리라』
하고 점괘를 말하니,
 『이미 귀하게 된 품격이 있을진대 또한 어찌 횡사할 이치가 있으리오? 무엇으로써 가히 횡액을 면하리이까? 원컨데 가르쳐 주소서.』
하고 크게 두려워 말하니,
 『천기(天機)는 누설키 곤란하오. 그대의 정상이 가긍하고 아이 또한 가히 아까우니, 내 마땅히 화를 면하는 계책을 지시하리이다. 이 아이가 혼인을 지낸 후에 사흘 동안은 절대로 처갓집에서 자서는 안 되며, 조석의 밥과 심지어 한 잔의 물이라도 처가의 물건은 마셔서는 안 되며, 또 왔다갔다 하기만하여도 자연히 앙화가 있으리라. 또한 작은 그림 한 폭을 줄테이니, 절대로 열어 보지말고 단단히 주머니 속에 넣었다가 만약 위급한 때를 당하거든 내어 보면, 마땅히 하를 면할 수 있는 도리가 있으리니, 반드시 명심하여 경계하고 주머니 속에 간직하게 하소서.』
 하니 아이의 아버지가 명심한 후에 또한 그 아들을 계칙(戒飭)함이 절절하였다. 과연 열 다섯 살에 권력있는 재상의 사위가 되어서, 대례의 날에 신랑이 점심과 저녁밥을 다 함께 먹지 아니하고, 또한 밤에도 신부의 집에서 유숙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서 사흘을 처가에서는 묵는 예를 폐하여 버리더니, 과연 한 잔의 물도 마시는 바 없고, 때로 혹은 처가에 잠시 왕래할 뿐이었다. 처부모가 크게 노하여 의심하여 일가 상하가 놀라지 않는 이 없더니, 혼인을 지낸 지열흘 쯤 지낸 어느날 밤에 신부가 배에 날카로운 칼을 맞고 유혈이 방 안에 그득하고 죽은지라, 온 집안이 통곡 화황하여 그 연고를 알지 못하더니,중의(衆議)가 모두,
 『신랑이 혼인한 날로부터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더니, 이는 반드시 곡절이 있는 것이라. 이번 이 뜻밖의 변괴의 원인은 틀림없이 신랑에게 있다. 만약 스스로 와서 행한 짓이 아니면 반드시 사람을 보내서 죽인 것이라. 불가불법에 고소하여 한번 엄하게 밝히면 단서를 얻으리라.』
 하니 장인이 또한 의심을 하여 한 쪽으로 정장(呈狀)하며 한쪽으로 추판(秋判)일러서 엄혹히 밝히라고 명하였거늘, 형조가 발차(發差)한 후에 신랑을 잡아 와서 그 처가에서 숙식치 않은 이유를 힐문하여,
 『이제 신부의 칼 맞고 죽은 것이 틀림없이 너의 행사라, 이 정장 있는 것이 또한 혹은 괴이할 것이 없으니, 이것이 의옥(疑獄)의 큰 것이라, 실지를 고하라.』
 하며 이어 위엄을 갖추어 물으니,
 『처가에서 숙식을 하지 않은 것은 어떠한 연고인지는 알지 못하고, 친교(親敎)를 좇았을 뿐이요, 신부의 참사는 실로 의외의 일이라 범한 바 없으니, 무엇으로써 직고하리오.』
 추조(秋曹)가 엄형으로써 묻고자 하여 이내 형구를 갖추니, 신랑이 어찌할 바를 몰라 통곡발명하여 장차 그 형벌을 면할 길이 없더니, 홀연히 마음 속으로 맹인이 준 그림을 생각하고, 이어 주머니에서 꺼내어 봉한 것을 뜯어 큰 소리로,
 『원컨댄 법부(法部)는 이 것을 보시고 처분을 내리소서.』
 하니,
 형판(型判) 이 그것을 바라본즉 곧 누런 종이 위에 개 세 마리를 그린 것이라, 묵연히 심사숙고하기를 반 식경에 형리들을 불러,
 『너희가 신부집에 가서 전갈한 후에 그 집의 족척은 물론이요, 문객과 종의 무리 가운데 만약 황삼술(黃三戌)이란 자가 있거든 불러 보내라고 말하고, 만약에 현장에 있거든 데리고 올지어다.』
 하니 형리들이 곧 신부의 집에 와서 전갈하니, 중놈 가운데 과연「황삼술」이란 자가 있는지라, 형리들이 데리고 와서 고하니, 추판이 곧 잡아들이게 하여 정색하고,
 『너의 죄는 네가 마땅히 알 것이니, 감히 숨길 수 없으리라. 내 이미 밝게 알고 있으니,  일일이 바로 아뢰고 소년 양반으로 하여금 횡액케 하지만 않으면, 너도 또한 견디기 어려운 악형은 받지 않으리라.』
 『소인이 반드시 죽을 죄가 있어서 이렇게 밝게 물으시는 바에, 어찌 감히 일호인들 속일 수 있으리까. 소인이 일찍이 그 댁의 소저로 더불어 잠통(潛通)한 일이 있사와 약속하기를 혼례한 후로 신랑을 모살하고, 가만히 함께 도망하여 백년을 함께 해로할 뜻으로 금석(金石)의 언약을 하였삽더니, 의외에 신랑이 초례만 지낸 후로 한번도 처가에서 유숙치 않을 뿐 아니라, 음식과 수장(水醬)까지도 조금도 접구(接口)치 아니하여 이로 인하여 찔러 죽이거나 독살(毒殺)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소저(小姐) 또한 가로되 <지나간 불미한 일은 후회막급이라 이제 이미 적당한 사람을 만났으니, 어찌 가히 계속 음탕한 일만 일삼으랴> 하고 소인을 거절한 후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니, 소인도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과연 어느 날 밤에 가만히 들어가 찔러 죽이니, 하니는 약속을 어긴 분함을 설원함이요, 하나는 신랑에게 그 재화가 옮겨가게 하고자 함이니, 이제 천신(天神)이 죄를 주어 악한 일을 발로하였은즉 이밖에 다시 사뢸 말씀이 없습니다.』
 추판이 크게 노하여 곧 그 자를 박살하고 신랑을 방송(  )하니, 대개 황지(黃紙)에 개 세 마리를 그린 것은 황지는 황씨 성을 이름이요, 술자(戌字)는 곧 구자(拘字)와 더불어 뜻이 같으니 이로써 보면 어찌 황삼술이 아니랴. 맹인의 이와 같은 신복(神卜)이 세상에 드문 바이요, 추조(秋曹)의 이와 같은 판단도 또한 뛰어난 밝음이라, 맹인의 미리 점친 것과 추당(秋堂)의 곧바로 해석하였음이 가히 신명(神明)이니, 만약 이와 같은 영복(靈卜)을 얻으면 일반 운수(運數)를 어찌 가히 알 수 없으리오.

 

 

 

 

問卦避凶(문괘피흉)

 

 한 선비가 먼 시골에 갈 일이 있어 이웃에 이웃에 유명한 점장이 맹인이 있음을 듣고 찾아가서,
 『내가 이번 원지행역(遠地行役)에 가히 무사히 가고 올 수 있겠는가? 나를 위해 점쳐 보라』
 하여 맹인이 점을 쳐 보더니 점괘를 말하되,
 『떠나서 사흘째 대낮에 반드시 횡사하리니, 가지 아니함만 못하겠소이다.』
 『만약 횡사할 줄 안다면 어찌 가히 떠나가랴. 다만 볼일이 대단히 요긴하니, 무슨 피흉면액(避凶免厄)의 길은 없겠는가? 그대는 나를 위하여 모름지기 다시금 한번 점쳐 달라.』
 하는 간청이 지극함에 맹인이 다시 점친 후에 반 식경이나 깊이 생각한 끝에,
 『과연 한번은 액을 면하고 무사히 돌아올 길이 있으니, 모름지기 스스로 생각하여 가히 도모하면 길을 떠나가도 무방하리다.』하니,
 『차례로 말하라. 죽음에서 생을 구함이 어찌 능히 도모하지 못할 일이리오.』
 『떠나서 사흘째 되는 날, 날이 밝을 즈음에, 길을 가다가 처음 만난 여인을 기어이 간통하면 스스로 무사하리다.』
 선비가 명심하더니, 길 떠난 지 과연 삼일되는 날에 일찍 떠나서 삼사십릿길을 간즉, 한 여자가 길 옆의 우물 가에서 빨래하는지라, 처음 보매, 상가(喪家)의 여자 같았다. 이에 말에서 내려 노방(路傍)에 앉아 있으니, 얼마 후에 여자가 일어나 돌아가거늘 선비가 그 종에게,『너는 말을 끌고 주막에 가서 말을 먹이고 쉬고 있으면 내가 잠시 볼 일이 있어 오늘 저녁이나 혹은 내일 아침에 가리니, 너는 모름지기 기다리라.』
 종이 말을 끌고 먼저 주막에 간 후에 선비가 이 여인을 따라 간즉, 반 식경쯤 간 곳에 한 초옥에 들어가거늘, 선비가 뒤를 따라 문으로 들어가니 고요하며, 한 사람도 없어 문정(門庭)이 쓸쓸한지라, 여인이 돌아다보면서 괴상히 여겨,
 『어떠한 양반이 나를 따라왔읍니까?』
 선비가 아무도 그 안에 없음을 보고 이에 무릎을 꿇고,
 『내가 대단히 민박(憫迫)한 사정이 있어 그대에게 애걸하노니 즐거이 좇겠읍니까?』
 『과연 무슨 일이오이까?』
 『내가 지금 천릿길을 떠났는데, 떠날 때 길흉은 점친즉 오늘 길 가운데서 처음 만나는 여인을 한번 상관해야만 가히 오늘의 횡사를 면한다 하니, 오늘 처음 만난 여인은 곧 그대인지라, 그대를 잠간 본즉 사람됨됨이 지중지귀(至重至貴)하거늘, 바라건대 그대는 장차 죽을 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 마음의 염치없음과 그대 마음의 음덕(陰德)은 마땅히 다시 어떻다 하랴?』
 여인이 말없이 깊이 생각하다가 잠시 후에,
 『내가 비록 민간의 상놈의 딸이지만, 일찌기 이와 같은 난잡한 행동이 없었사오니, 양반의 정상을 들으니, 결코 색(色)을 취해서가 아니요, 남편이 멀리 떠나 없고 첩이 혼자 있으니,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함은 또한 좋은 일이나, 다만 백주에 몸을 허락함이 몹시 부끄러우니, 머물러 기다리시다가 밤에 하심이 어떠시오?』
 한데 선비가 심히 기뻐 앉아서 기다려 밤이 되매, 서로 간통하고 새벽에 일어나 작별할 때 열냥(十兩)의 돈을 주니, 여인이 받지 아니하고,
 『내가 한번 몸을 허락하였음은 곧 사람을 살리려고 하였을 뿐이라, 어찌 가히 물건을 받으리오. 돌아가시는 길에는 다시 반드시 찾을 필요가 없겠습니다.』
하니, 선비가 기특히 여기고 이별한 후에 먼젓 주막에 간즉, 종이 문을 열고 맞이하여 절하면서,
 『어제 십여리를 가서 돌다리에 이른즉, 돌다리가 갑자기 무너지며 말이 물 가운데 떨어져서 바위와 돌 사이에 부딪혀 허리가 부러져 죽으니, 소인이 경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말을 가까운 마을에 팔고, 빈 몸으로 왔은즉, 낭패가 적지 않습니다.』하니,
 선비가 또한 어찌할 길이 없어 말을 세내어 왕래했었다. 만일 그날에 여자 때문에 지체치 않았던들 다리가 무너지며 말이 떨어질 때에 반드시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 맹인이 당일에 처음 보는 여자를 점쳐 얻은 것은 바로 이 지체하여 흉을 피하게 함이니, 어찌 신험(神驗)이 아니리오. 이로써 보건댄 흉을 피하고 길(吉)하게 나아가는 것이 정녕코 있으나, 그러나 저와 같은 신복(神卜)을 어찌 쉽게 얻을 수 있으리오.

 

 

 

 

智婦瞞盜(지부만도)

 

 한 선비가 외로울 뿐 아니라 집안조차 가난하여 나이 이십에 영남에서 장가 갔더니, 그 처가 절세 미인일 뿐 아니라 재주가 비상하여 일년 동안에 능히 생활을 그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그해 늦은 세말에 처가 고향에 다니러 가겠다 하거늘, 선비가 허락하여 말 한 필을 얻어 처를 태우고 선비는 보행하여 가더니, 오륙일 동안 가는데 저녁에 어느 주막에 이르러 자게 되었었다. 밤중에 문득 문 밖에서 사람의 지껄이는 소리와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지라 선비가 놀라 일어나 등불을 켜고 오똑하니 앉았는데, 문득 한 사람이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선비의 방으로 들어오는 지라, 선비가 맞이한즉, 그 사람이 나이는 삼십에 극히 준걸스럽고 거룩하여 품격과 거동이 동탕(動蕩)하고, 몸에는 남천익(藍天翼)을 입고 모양이 마치 아장(亞將)이나 대장과 흡사하였다. 내외 부하의 그 수를 알지 못하겠는데, 그 사람이 선비와 더불어 인사가 끝난 다음에,
 『그대는 어떠한 사람인데 일찍이 한번도 면식이 없는 터에 깊은 밤중에 가난한 선비의 방을찾으셨나?』하고는 선비가 물으니,
 『나로 말하면 산중에 숨어 사는 사람으로 수하에 거느린 졸도가 천만을 넘고, 부귀 또한 방백(方伯)을 부러워하지 않을만하나, 다만 나이 삼십에 아직 장가를 들지 못하였음이라. 대대 시골 여인은 가합할리가 없고 해서, 이제 현형(賢兄)이 부인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매, 부인이 아름답고 또한 현숙하기가 세상에 짝이 없단 말을 듣고, 이 말씀이 극히 무례한 줄은 아나, 형이야 서울 분이요 아내 구하기도 또한 어렵지 않을 터인즉, 이제 내가 찾은 뜻은 현형의 실내를 구하여 산중에서 내조(內助)를 삼고자 하니, 오천 금으로써 원컨데 바꾸는 것이……한번 형의 뜻이 어떠하시오?』
 『세상에 어찌 백지(白地)에 남의 처를 빼앗는 자가 있으리오? 또한 어찌 처를 돈받고 파는 이치가 있으리오?』얼굴빛이 새파랗게 되어 떨면서 말하니,
 『형은 왜 생각이 그렇게 모자라시오? 이 일이 예의가 아닌 줄 모르는 것이 아니로되, 내가 이미 여기 올 때에 이 말을 하였은즉 어찌 이를 중지할 수 있으리오. 형이 만일 내 말대로 한 후에 이 돈으로써 다시 현실(賢室)을 택하시면 오히려 상처 없이 몸을 보존하여 돌아갈 것이어니와, 만약 듣지 않을 경우에는 형은 한 몸이요, 나로 말하면 많은 부하를 거느렸으니, 마땅히 겁탈하여 가지고 돌아가리니, 형의 낭패 뿐이고 또한 오천 금도 잃어버릴 터이니, 어찌 생각이 이에 미치지 않는가?』
 하고 크게 웃으며 말하니, 선비가 놀라 눈물을 흘리던 차에, 벽을 격한 안방에서 갑자기 여인이 선비를 부르거늘 선비가 들어간 후에, 그 사람이 가만히 벽을 격하여 그들의 말을 들은즉 그 처가 말하기를,
 『이것이 큰 변이니 가히 입으로 서로 싸울 일이 아니와요. 또한 힘으로써도 항거할 수 없사오니, 그들이 반드시 큰 도적으로 이와 같이 말한즉 어찌 능히 꺽으리까! 또한 생각켄댄 첩이 낭군집에 들어온 후에 기한을 이기지 못했삽고, 또한 자녀가 없거늘 저 사람에게 몸을 허락하면 첩도 평생에 부귀를 누리고, 낭군도 또한 오천금으로 다시 현처를 얻으며, 널리 밭과 집을 장만하고, 가히 부잣집 늙은이가 될 터이니, 이것이 어찌 낭군과 첩의 양편이 다 좋은 일이 아니리까? 일이 여기에 이르렀은즉 가히 벗어날 길이 없삽기에, 곧 그렇게 허락하시와 몸까닭으로 하여 귀하신 몸을 손상치 말게 하시옵소서.』하고, 흐느껴 우는 소리가 슬프기 그지 없었다. 선비가 그말을 듣고 그의 손을 잡고 통곡해 가로되, 『내 비록 죽을지언정 어찌 참아 그대와 생이별하리오.』
 『대장부가 어찌 그리 녹록하시오? 첩도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니 속히 나가도록 허락하시오.』
 하니 선비가 마음에 슬프고 분하여 어찌할 수 없는지라, 밖으로 나오니 그 사람이 웃으면서,
 『잠간 방안의 애기를 들은즉 과연 현부인이라, 그대는 어찌 한때의 정을 금하지 못하고 큰 재화(災禍)를 취하고자 하는고?』
 선비가 맥없이 앉거늘 선비의 처가 종놈들을 불러,
 『내 마땅히 장군을 따라 가리라. 머리 빗고 세수하고 새옷 갈아 입을 동안에 너희들은 마땅히 때를 맞추어 교자(轎子)와 하인으로 하여금 기다리게 하여라.』
 하니, 그 사람이 듣고 크게 기꺼워하여, 곧 행구를 대령하고 한편으로 오천 금돈을 방 안으로 들여오니, 선비가 넋이 몸에 붙어있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두어 식경 지난 후에 선비의 처가 교자를 타고 나오거늘, 여러 도적이 교자를 붙잡고 옹호하여 나오니, 그 사람이 크게 기뻐 선비를 사별(謝別)한 후에 함께 따라 가더라. 선비가 통곡하고 다시 안방에 들어와 보니, 처가 전과 같이 단정히 앉아 웃는 얼굴이 기막히게 아름다운지라, 죽은 사람 만난 것 같아 또한 반갑고 또한 놀라며,
 『이것이 어찌된 일이오?』
 『낭군은 가만히 앉으셔서 저의 말씀을 들으시와요. 저도 적이 깊은 밤에 부하를 거느리고 와서 겁탈하여 돌아가면 우리 두 사람이 무엇으로 써 면하리오. 저를 오천 금으로써 바꾸자 함은 선심이오니, 허락치 않사오면 오직 겁탈을 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낭군 신상이 어찌 될지 알지 못하여, 제가 꾸며서 낭군께 청하여 아까 말과 같이 한 것은 도적으로 하여금 마음을 놓고 방심케 하고자 한 것이옵니다. 제 몸종이 모양이 곱고 나이 또한 첩으로 더부러 비슷한 고로 급급히 치장하여 치송하였사오니, 도적이 반드시 나로 알고 기뻐하리이다. 몸종 아이도 가히 부귀를 얻을 것이요, 낭군은 처를 잃지 않으시고 또한 많은 재물을 얻었사오니, 크게 재산을 불군지라, 어찌 일이 마땅함을 얻음이 아니리이까?』
 『그대의 현지(賢知)는 내가 능히 만 분의 일도 따를 수 없도다. 꿈에서 처음 깬 것 같소.』
 하며 칭찬하니,
 『일이 어찌할 수 없게 되와 부득이하여 조그만 계책을 베푼 것 뿐이오이다. 무엇이 그리 칭찬하실 만하겠나이까?』
 하고 바리바리(  )돈을 싣고 시골로 가서 널리 밭과 집을 사서 벼락 부자가 되고, 그 후에 벼슬까지 높아져서 백수해로 하고 자손이 만당하였다.

 

 

 

 

鹽商盜妻(염상도처)

 

 산골의 한 생원이 초가 삼칸에 내외가 같이 살고 있더니 어느날 저녁에 소금장수가 와서 하루밤 자고가고자 간청을 하였다. 생원은,
 『우리집이 말과 같고 방이 또한 협소한 데다가 안팍이 지척이라 도저히 재울 수가 없소.』
 하면서 보기 좋게 거절하였다. 소곰장수도 그만한 말로서 물러나지 않았다.
 『저도 빈반(貧班)이라 소금을 팔아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데 이곳을 지나가다 마침 해가 져서 이미 인가를 찾아서 하루밤 자는 것이 허락되지 않을진덴 비단 호랑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어찌 인정 같지않음이 이런 수 있습니까?』
 그 말을 들은 생원은 당연한 사리에 욱이지 못하고 허락하였다.
 생원이 안으로 들어가 밥을 먹은 후에 그 처에게 말하였다.
 『요사이 내가 송기떡이 몹시 먹구 싶은데 오늘 밤에는 송기떡을 해가지고 그대와 같이 먹음이 어떠하오?』
 『사랑에 손님을 두고 어찌 조용히 함께 먹을 수 있어요?』
 『그건 어렵잔치요. 내가 노끈으로 내 불알에 맨 후에 노끈끝을 창문 밖으로 내어 놓을터니 떡이 다되거든 가만히 와서 그 노끈 끝을 쥐고 당기고 흔들면 깨어나 들어와서 조용히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아요?』
 그 처는 마침내 그러자고 하였다. 원래 이집 안팍은 다만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터라 소금장수가 귀를 대어 엿들으니 생원이 나오므로 소금장수는 먼저 자리에 누워서 자는 척하고 생원의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생원이 나와본즉 소금장수는 이미 자리에 누워 자고 있으므로 안심히고 노끈으로 그 불알을 매더니 한끝을 창넘어로 내어 놓고 누워 정신없이 잠이 들어 코를 우뢰같이 골았다. 그 때 소금장수는 생원이 깊이 잠든 것을 알고 살그머니 일어나서 생원의 불알에 맨 노끈을 풀어 가지고 자기 불알에 매어놓고 누웠다. 얼마동안 누웠으니 창밖에서 노끈을 몇번 흔들므로 소금장수는 가만히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가 문앞에 서서 적은 소리로 속삭였다.
 『여보 불빛이 창에 비처 혹시 소금장수가 자다가 깨어나 엿볼지도 모르니 불을 끄오.』
 『어두워서 어떻게 떡을 먹어요?』
 『아무리 어둡다고 하지만 손이 있고 입이 있는데 어디 먹지 못하겟소.』
 생원의 처는 웃으면서 불을 껐다. 소금장수는 방에 들어가 생원처와 함께 송기떡을 먹고는 또한 욕심이 나므로 생원처를 끼어안고 누워서 싫도록 재미를 보고 슬그머니 나왔다.
 바같으로 나온 소금장수는 곰곰히 생각하였다…… 떡도 먹었겠다. 재미도 보았겠다. 여기 바랄 것은 없다. 더 있다간 탄로가 날지 모르니 에라 빨리 가버리자……소금장수는 곧 떠날 준비를 하여가지고 생원을 불렀다.
 『주인장! 주인장! 벌써 닭이 울었으니 나는 떠나야겠소 하루밤 잘 쉬고 갑니다. 후일에는 다시 만납시다.』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하고 떠나가 버렸다. 이제야 잠을 깬 생원은 내심 생각하기를…… 닭이 울도록 어찌 아무 소식이 없을까? 떡을 하다가 잊어버리고 자버린 것이나 아닐까?……하면서 불알을 만져 보았다. 이 어찌된 일인가 매어 두었던 노끈이 어느 사이에 풀려지고 없었다…… 내가 자다가 잠결에 벗겨버렸는가?……하고 창문을 더듬 더듬 더듬어 보니 거기에는 노끈이 그대로 있었다…… 옳지 떡을 해놓고 이것을 흔들어 보아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까 자버렸는게로구나…… 생각 하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처는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이제 소금장수도 없으니 안심하고 떡이나 먹어보자……하고 그 처를 깨웠다.
 『여보! 나는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는데 떡은 어째고 잠만자오.』
 처는 눈을 뜨고 빙그래 웃으며,
 『무슨 말씀을 하오? 아까 떡도 먹고 그것도 하시고는…… 또 무엇하러 들어왔어요?』
『?……』
 『아까 들어와서 불을 끄고는 떡을 먹고 그것까지 실컷하시고는 이제 또 무슨 말씀이요. 그럼 그 사람은 당신이 아니고 귀신이란 말이요?』
 처는 사뭇 놀리는 쪼다. 그러나 생원은 더욱 의심이 깊어갔다.
 『그럼 당신이 떡을 해놓고 노끈을 당겼소?』
 『그러잔코요 노끈을 당기니 당신이 들어왔지 않아요?』
 대답은 하나 그 처가 곰곰이 생각하니 이상하였다. 생원은 무릎을 치면서,
 『허! 그놈! 허! 그놈 소금장수란 놈이 한짓이로구나. 그 원수놈이 우리집 마누라와 떡을 훔쳐먹은 게로구나! 허 그놈』
 생원은 당황해 하면서 어찌 할 줄을 몰랐다. 그 처는 민망하고 부끄러웠으므로 그 순간을 모면할 도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웃으면서,
 『그래서 그런지 이상합디다요. 운우의 재미를 볼 때 그놈이 어찌나 크고 좋은지 전과 다르다고 생각하였더니 그것이 소금장수의 것이었던가 보군요.』
 생원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陰陽隨長(음양수장)

 

 한 여염집 주인으로 직장(直長)이라 청하는 자가 종종 왕래하는 참기름 장사하는 여인과 드디어 서로가 눈이 맞아 매양 그 기회만 노리더니, 하루는 집안이 텅 빈데 그 여자 장수가 또 오거늘, 좋은 말로 꾀어서는 손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 그 행사를 하게 되었는데, 양구(陽具)가 어찌 큰지 목침(木枕) 덩이 만하매 여상인이 도저히 대적할 수 없어 한번 겁(劫)을 집어 먹고 여인은 극환(極歡)을 누리지 못한 채 그냥 빼어 돌아가니, 음호(陰戶)가 찢어지고 아파서 능히 감내할 수 없어 여러 날을 조섭하고 있다가, 그 후에 그 집에 내왕하면서 매양 그 주인만 보면 웃음을 참지 못하므로 안주인이 괴상히 여겨,  
 『근래에 그대가 매양 나만 보면 웃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내 마땅히 실지로 말하리라. 행여 죄책을 내리지는 마시오. 저번에 직장님이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나를 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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